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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 6) 베드로 사도가 전한 복음 2017-08-21
작성자 강금성 조회수: 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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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 사도가 전한 복음



  앞서 복음에 대한 다섯 편의 글을 정리하면 첫째,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예수는 우리의 범죄함 때문에 죽으셨고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만 있고 부활이 없는 복음은 잘못된 복음입니다. 둘째,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복음인 이유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 죄의 종노릇에서 벗어나기 때문입니다. 셋째,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것이 복음인 이유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나서 하나님을 향해 산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사람으로 새로 지으심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죄의 종노릇에서 벗어나는 것과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이 없는 복음은 다른 복음입니다. 

  복음에 대한 위 세 가지 정리는 모두 사도 바울이 쓴 바울서신을 근거로 한 것입니다. 그런데 초대교회에서 바울보다 훨씬 더 큰 권위를 인정받았던 베드로가 증거한 복음도 바울이 전한 복음과 다르지 않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새로 지으심을 받게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복음을 용어는 다르지만 같은 의미로 ‘거듭나게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벧전 1:23, 25하)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25)...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베드로가 말한 복음은 우리를 ‘거듭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구원론이나 현대 교회에서 전하는 이른바 시중복음은 복음을 ‘의롭다 함을 받게 하는 것’(칭의)이라고 합니다. 전도폭발훈련에서 말하는 복음, 글없는책, 사영리 그 어느 것도 거듭남과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합니다. 이는 시중복음들이 사도들이 전했던 것과는 다른 복음이며, 그것들로는 사람을 구원에 이르게 할 수 없다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해 사도 베드로는 어떻게 말하는지 베드로전서를 통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

  베드로전서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관한 본문은 1:18-19, 2:24, 3:18, 4:1-2절입니다. 이 구절들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1)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우리를 헛된 행실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18)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19)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우리를 헛된 행실에서 대속합니다. 주목할 점은 베드로가 우리 말 \'대속하다\'로 번역된 헬라어 ‘뤼트로오'란 단어를 어떤 의미로 사용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는 대속을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대속이 단순히 ‘우리가 죄를 범함으로 받아야 할 형벌을 예수께서 대신 받음으로 죄를 용서해주신다.’는 의미가 아니라 '죄의 종노릇에서 벗어나게 한다.'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서신의 수신자들은 복음을 듣고 믿었을 때 조상들이 물려준 헛된 행실에서 벗어나 더 이상 그 죄를 범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현대 교회가 선포하는 복음은 이 대속의 의미를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담당하고 대신 죽으심으로 우리로 죄의 형벌을 받지 않게 하셨다.'는 의미로 왜곡 해석함으로써, 죄로부터 자유하게 하는 하나님의 은총을 충분히 누릴 수 없게 하고 있습니다. 

2)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우리를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합니다.

(2:24)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베드로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신 이유는 단순히 우리가 지은 죄를 용서해주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를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사도 베드로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의 목적에 대해 말하는 것은 우리의 거듭남을 위한 것이지 칭의(稱義)를 위한 것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3)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죄 아래 있던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해 하나님을 위해 살게 합니다.

(3:18)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그리스도는 우리 죄를 위하여 죽고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시중복음이 말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의를 덧입혀서 의롭다 하심을 얻게 할 목적이 아니라,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해 하나님을 위해 살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4)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우리로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게 합니다. 

(4:1)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는 죄를 그쳤음이니
(2)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그리스도께서 육체의 고난을 당하신 것은 우리의 남은 때를 다시 사람의 정욕을 따라 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상에서 보듯이, 현대 교회에서 전하는 복음,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으므로, 예수님을 믿으면 값없이 의롭다하심을 받는다."는 속칭 '전가되는 의'로 의롭게 된다는 것에 대해서, 베드로 사도는 그의 서신 어느 곳에서도 언급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반면에 현대 교회에서 선포하는 복음은 베드로 사도가 말하는 '헛된 행실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사는 것', '죄의 종노릇하던 자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향해 사는 것', '육체의 정욕을 따라 사는 것을 그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게 하는 것'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습니다. 사도들은 예수의 증인입니다. 베드로전서를 근거로 볼 때 현대 교회는 사도들이 말하는 복음의 내용에 대해서는 침묵함으로써 부인하고, 사도들이 말하지 않은 다른 복음을 믿고 있다는 것이 드러납니다.

2. 그리스도의 부활 

  이미 지적한 것처럼 현대 교회가 전하는 복음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대해서 사도들과 다른 말을 합니다.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해서는 아무 말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도 복음을 말할 때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함께 부활을 말합니다. 베드로전서에서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해 말하는 본문은 1:3, 1:23-25, 3:21절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왜 우리에게 복음인가에 대해서 베드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1)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를 거듭나게 합니다(1:3, 1:23, 25).

(1:3)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23)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25)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를 거듭나게 합니다. 부활에 대한 베드로의 증거는 바울이 에베소서에서 말한 부활과 동일합니다. “(엡 2:1, 5)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5)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복음인 것은 그의 부활이 곧 우리의 부활(거듭남)이 되기 때문입니다.

2)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의 부패한 양심을 회복시켜 선한 양심이 되게 하고, 그 양심이 하나님을 향해 찾아가도록 합니다.

(3:21)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

  개역성경은 3:21절을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고 번역했습니다. 베드로는 복음이 우리에게 어떤 일을 하는가에 대해, 복음은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해 찾아가게 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 양심을 회복하여 선한 양심이 되게 하고, 하나님을 향해 살도록 합니다. 

3. 베드로와 바울이 전한 복음 비교 
 
  사도 바울과 베드로의 서신을 살펴보면 두 사도가 전한 복음은 모든 면에서 일치합니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1)베드로와 바울 두 사도는 구원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다고 했습니다(갈 2:16, 벧전 1:9). 

(갈 2:16)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벧전 1:9)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구원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다는 것은 제1차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확인하고 채택한 내용입니다(행 15:11). 베드로나 바울은 모든 사도들과 장로들이 합의했던 복음의 내용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2)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왜 나에게 복음이 되는가에 대해서도 베드로와 바울은 같은 말을 합니다.  

①죄에 대하여 죽음(갈 2:20, 벧전 2:24)

(갈 2:20)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벧전 2:24)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②육체의 정욕과 탐심을 따라 살지 않음(갈 5:24, 벧전 4:1-2)

(갈 5:24)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벧전 4:1-2)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는 죄를 그쳤음이니 (2)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③죄에서 벗어남(롬 6:6, 벧전 1:18-19)

(롬 6: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벧전 1:18-19)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19)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죄에 대하여 죽고(갈 2:20, 벧전 2:24), 육체의 정욕과 탐심을 따라 살지 않으며(갈 5:24, 벧전 4:1-2), 죄에서 벗어납니다(롬 6:6, 벧전 1:18-19).  

3)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왜 우리에게 복음이 되는가에 대해서도 베드로와 바울은 동일하게 진술합니다.

①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를 거듭나게 합니다(엡 2:1, 5, 벧전 1:3, 23-25)

(엡 2:1)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5)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벧전 1:3, 23, 25)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23)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25)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②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로 하나님을 향해 살게 합니다(롬 6:11, 벧전 1:23)

(롬 6:11)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벧전 3:21)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개역: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니라)

  베드로전서의 수신자들은 당시 로마 속주인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 그리고 비두니아에 흩어져 있는 그리스도인입니다(1:1). 그리고 바울서신에 포함된 갈라디아서는 갈라디아 교회에 보낸 편지이고, 에베소서는 에베소 교회(아시아 속주의 주도)에 보낸 편지입니다. 이로 볼 때 사도 바울이 보낸 갈라디아서와 에베소서, 그리고 사도 베드로가 보낸 베드로전서의 수신자는 동일합니다. 이들 교회는 서로 다른 두 사도인 베드로와 바울로부터 동일한 복음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교회도 이들 교회처럼 사도들이 전했던 그 복음을 받아야 할 권리와 의무가 있습니다. 교회가 가진 이 권리와 의무는 다른 누구에 의해서도 훼손되어서는 안 됩니다. 

  사도 바울은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엡 2:20)고 했습니다.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지 않은 교회는 진정한 교회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이 전한 복음과 시중복음을 비교해 본 결과 개신교회는 사도들의 터 위에 세워져 있다기보다 루터의 터 위에 세워져 있어 보입니다. 누가 어떤 터를 닦아두는 것은 그의 책임입니다. 그러나 누구의 터 위에 교회를 세우느냐는 것은 우리 자신의 책임입니다. “당신이 속한 교회는 사도들의 터 위에 세워져 있습니까? 루터의 터 위에 세워져 있습니까?” 저는 오래 전부터 사도들의 터 위에 교회를 세우고자 사도들이 전한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힘써 전했습니다. 그 결과 대부분의 성도들이 거듭남을 체험하고, 성결의 은혜를 입는 이들이 증가하며, 성령의 임재 가운데서 겸손히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을 열매로 받고 있습니다. “목사님, 우리 집에도 하나님 나라가 임했어요.”

“당신이 속한 교회는 사도들의 터 위에 세워진 교회입니까?”


신부동교회 강금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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