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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 9) 보혈의 공로 2017-10-06
작성자 강금성 조회수: 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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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9) 이신칭의는 거짓된 교리라는 셋째 증거: 보혈의 공로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가 덧입는 의나 전가되는 의로 오해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에 대한 잘못된 이해 때문입니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은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의 허물과 죄를 덮어준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은 우리가 즐겨 부르는 찬송가 265장 1절에도 나타나 있습니다. 

주 십자가를 지심으로 죄인을 구속하셨으니
그 피를 보고 믿는 자는 주님의 진노 면하겠네
내가 그 피를 유월절 그 양의
피를 볼 때에 내가 널 넘어서 가리라 

  나는 비록 죄인일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나를 덮어주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의롭다 함을 얻고, 심판을 면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복음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의를 덧입는 의로 보는 한 예입니다. 그러나 찬송가 284장 2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에 대해 다른 이해를 보여줍니다. 

주의 보혈로써 정결하게 씻겨 죄악에서 떠난 몸이 되었고
세상 근심 구름 간 곳 없어지니 하나님의 빛이 영화롭도다
주의 그 사랑 한량없도다 찬송할지어다 예수의 공로
주의 그 사랑 한량없도다 찬송할지어다 예수의 공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를 정결하게 씻어 죄악에서 떠나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복음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의를 실제적인 의로 생각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이처럼 교회에서 부르는 찬송가 안에도 하나님의 의를 덧입는 의와 실제적인 의로 보는 상충된 이해가 존재합니다.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의 구호로 외쳤던 ‘오직 성경’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모든 신앙은 성경을 근거로 세워져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피에 대해서도 성경이 말하는 대로 믿어야 합니다. 신약성경이 그리스도의 피에 대해 말하는 것을 살펴보면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가 무엇을 말하는지 드러납니다. 

1.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새 언약을 맺게 합니다. 

  신약성경의 맨 앞에 나오는 세 권의 책, 즉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은 예수님이 피 흘리신 목적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언약을 맺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마 26:28)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막 14:24)이르시되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눅 22:20)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세 복음서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언약을 위해 흘리는 것이라고 합니다. 누가복음은 그 언약이 ‘새 언약’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맺은 옛 언약(출 19-24장)을 대체하는 새 언약을 맺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를 흘리셨다는 것입니다. 이 세 복음서는 예수님이 새 언약을 맺기 위해 피 흘리셨다는 것만을 유일하게 선포합니다. 

  언약은 몇 가지 요소로 구성됩니다(참고, 출 19-24장). 첫째로 언약은 언약을 맺는 양측 당사자가 있습니다. 옛 언약은 여호와 하나님과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맺은 언약입니다. 새 언약의 언약 당사자는 여호와 하나님과 예수를 주라 부르는 모든 사람입니다. 둘째로 언약은 서로가 지켜야 할 의무조항이 있습니다. 옛 언약에서 이스라엘 자손이 할 일은 율법을 지키는 것입니다(출 19:5-6). 새 언약에 참여하게 될 사람들이 지켜야 할 일은 회개하고 복음을 믿는 것입니다(막 1:15). 셋째로 언약은 양측 사이의 중보자가 필요합니다. 옛 언약에서 중보자는 모세였고(출 19:7-8), 새 언약의 중보자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넷째로 언약은 인을 침으로써 효력이 발생됩니다. 언약의 인을 칠 때 옛 언약은 짐승의 피를 뿌렸고(출 24:6-8), 새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뿌렸습니다. 예수님의 피가 뿌려짐으로써 언약은 효력을 발생하여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합니다. 예수님의 피가 언약을 맺기 위해 흘리신 피라는 사실은 공관복음 저자들뿐만 아니라 신약성경의 다른 책 저자들도 증언합니다. 

(고전 11:25)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벧전 1:2)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히 12:24)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나은 것을 말하는 뿌린 피니라

  사도 바울이나 베드로, 그리고 히브리서 저자까지도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부르는 모든 사람 사이에 언약을 맺어주는 새 언약의 피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새 언약을 맺은 사람들은 이스라엘 자손이 그러했던 것처럼(출 19:5-6) 하나님의 소유가 되어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이 됩니다(벧전 2:9-10). 

  그런데 세 복음서 중 마태복음만 다른 두 복음서와는 달리 그리스도의 피 흘림에 대하여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를 첨가시켰습니다. 이 구절 때문에 사람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신 목적이 “우리가 범한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피 흘려 우리 죄를 용서해주셨다.”라고 생각합니다. 죄 사함을 ‘죄의 용서’로 생각하고 의를 덧입는 것으로 오해한 것입니다.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죄 사함을 얻게 한다’라고 번역된 헬라어 ‘앞헤시스’는 ‘어디에서 떨어져 나가다’란 뜻을 가진 ‘아포’라는 전치사와 ‘보내다’란 뜻을 가진 ‘히에미’라는 동사가 결합된 것으로, ‘죄로부터의 분리’, 혹은 죄의 ‘속박이나 구속에서 벗어남’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마태복음 26장 28절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는 말씀은 “많은 사람을 죄의 종노릇에서 벗어나게 하여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언약을 맺도록 하기 위해 흘리는 피”라는 뜻입니다. 옛 언약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을 바로의 종노릇에서 벗어나게 하여,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겠다고 언약을 맺고, 그것을 인치는 표로 짐승의 피를 뿌렸습니다. 이제 새 언약은 죄의 종노릇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종노릇하는 사람들을 만들어내고, 그 언약을 맺는 것으로 예수님이 피를 흘리셨다는 것입니다. 

2.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죄에서 속량하기 위해 피 흘리셨습니다(엡 1:7).

(엡 1: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속량’이란 헬라어 ‘아폴뤼트로시스’를 헬라인들은 노예를 ‘자유케 하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참고, 출 6:6). 에베소서 1:7절에서 사도 바울은 속량을 ‘죄 사함을 받는 것’과 같은 의미로 사용했습니다(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죄 사함’은 헬라어 ‘앞헤시스’로 앞서 살펴본 것처럼(마 26:28) 아폴뤼트로시스와 같이 ‘벗어나는 것’ 혹은 ‘자유’를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를 죄의 종노릇에서 벗어나게 하여 하나님을 위해 살도록 하는 능력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죄의 종노릇에서 벗어나게 한다는 것은 성경 여기저기에서 발견됩니다. 요한일서 1장 7절에서 요한도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를 죄에서 벗어나게 한다고 했습니다.

(요일 1:7)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7절에서 요한은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깨끗하게 한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두 말이 매우 비슷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전혀 다른 말입니다. 하나는 지은 죄를 깨끗하게 한다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사람을 깨끗하게 해서 다시는 죄를 짓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도둑질을 했습니다. 그는 죄를 범한 것이고, 죄에 따른 벌을 받아야 했습니다. 도둑질한 사람의 아들이 와서 대신 잘못을 빌고 물건 값을 지불해주었습니다. 이에 주인이 그를 용서했습니다. 도둑질한 대가를 벌로 받지 않아도 되었고 도둑질한 죄를 용서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또 다른 경우, 도둑질한 것이 드러났을 때 아들이 주인을 찾아와 물건 값을 보상해주고 사정사정하면서 용서를 비는 것을 본 도둑질한 아버지가 자기 때문에 아들이 수모를 당하는 것을 보고 몹시 부끄러웠습니다. “내가 다시는 자식 보기에 부끄러운 짓을 않겠다.”고 다짐하고, 다시는 도둑질을 하지 않았습니다. 

  앞선 경우는 도둑질한 죄를 용서받고 깨끗하게 된 것이고, 나중의 경우는 그 사람이 도둑질에서 깨끗해진 것입니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란 말씀은 후자의 경우입니다. 예수님의 피는 우리를 전에 범하고 살았던,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합니다. 사도들과 초대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죄에서 벗어나게 한다는 것을 바르게 알고 그 은혜를 누렸습니다. 

(벧전 1:18-19)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19)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계 1:5)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혹자는 로마서 5장 9절에 있는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란 말씀을 근거로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는 전가되는 의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 구절 자체로는 하나님의 의가 전가되는 의인지 실제적인 의인지를 판단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바로 다음 장인 로마서 6장에서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는 용어를 ‘죄에서 벗어난 상태’의 의미로 사용했습니다. 

(롬 6:6-7)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7)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7절에서 보는 것처럼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는 용어는 ‘죄에서 벗어난 것’을 가리킵니다. 6절에서도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우리가 다시는 죄에게 종노릇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는 말씀을 근거로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를 전가되는 의라고 주장하는 것은 성경과 다른 잘못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은 죄의 종노릇하던 사람이 죄에서 벗어나 실제로 의롭게 된 것을 가리킵니다.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를 죄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실제적인 의입니다.

3.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죄를 없이 하고 우리 양심을 깨끗하게 합니다.

  신약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에 대해 가장 많은 분량을 할애하여 가르치고 있는 책이 히브리서입니다. 히브리서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을 옛 언약에서 제사장이 뿌린 짐승의 피와 대조함으로써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을 보여줍니다. 

1)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 안에서 죄를 없앱니다. 

(9:25-26)대제사장이 해마다 다른 것의 피로써 성소에 들어가는 것 같이 자주 자기를 드리려고 아니하실지니
(26)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한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물로 드려 죄를 없이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옛 언약에서 대제사장은 지성소에 계신 하나님께 나아갈 때 짐승의 피를 뿌리고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다음 해 다시 하나님께 나아갈 때는 또 짐승의 피를 뿌리고 들어갔습니다. 그렇게 해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대제사장은 짐승의 피를 뿌렸습니다. 이 사실이 말하는 것은 짐승의 피로는 대제사장 안에 있는 죄를 없이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죄를 ‘없이하다’의 헬라어 ‘아데테시스’는 죄를 ‘폐지하다’ 혹은 죄를 ‘무효화하다’를 의미합니다. 즉 범한 죄를 용서해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 속에서 죄를 완전히 없애 다시 죄를 범하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새 언약에서 피를 뿌린 예수님은 다시 십자가에 못 박혀 피를 흘리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 안에서 죄를 없이 하였기 때문입니다. 

2)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 양심을 깨끗하게 합니다. 

  양심은 사람을 교훈하며(시 16:7), 가책을 느끼도록 함으로써 잘못된 길에서 돌이키도록 합니다(요 8:9).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율법을 모르는 이방인들에게는 양심이 율법의 기능을 한다고 했습니다(롬 2:15). 그러나 모든 사람의 양심이 도덕적으로 동일한 기준을 갖고 있지는 않습니다. 어떤 사람의 양심은 약하고 더러워 악을 행하면서도 아무런 가책을 느끼지 못하기도 하고(고전 8:7-10), 어떤 이는 화인을 맞은 양심을 갖고 있습니다(딤전 4:2). 또 어떤 이는 선한 양심을 가졌고(착한 양심, 딤전 1:5, 벧전 3:16), 어떤 이는 깨끗한 양심을 가지고 있습니다(청결한 양심, 딤전 1:19, 3:9). 각자의 양심에 따라 삶의 모습도 달라집니다. 그리스도의 피는 사람의 양심을 깨끗하게 하고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온전한 양심이 되게 합니다.    

(히 9:13-14)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14)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히 10: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이처럼 그리스도의 피에 대해 가장 많은 본문을 할애하고 있는 히브리서는 그리스도의 피를 우리 안에서 죄를 없이 하고, 더럽고 악한 양심을 깨끗하고 온전하게 회복시켜주는 것이라 합니다. 어느 한 구절도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의 죄와 허물을 덮어줌으로써 의를 덧입혀준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맺는 말  

  황산을 가죽재킷에 덧발라 ‘황산을 바른 가죽재킷’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가능할까요? 말로는 가능하지만 실제로는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가죽에 황산을 바르는 순간 가죽 위에 황산이 덧발라지는 것이 아니라 가죽을 녹여버리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의 피가 죄인에게 뿌려지면 그리스도의 피가 그를 덮어서 하나님이 그의 죄를 보지 않고 그리스도의 피를 보고 지나간다는 것은 말로는 가능하나 실제로는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피는 사람의 양심까지도 깨끗하게 하여 모든 죄에서 떠나게 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신약성경에서 그리스도인들이 흔히 생각하는 유월절 어린양의 피와 관련된 표상, 즉 그리스도께서 흘린 피가 우리를 덮어주기 때문에 우리가 죄 가운데 거할지라도 그리스도의 피 공로로 심판을 면하고 구원을 받는다는 개념은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따라서 복음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는 전가되는 의 혹은 덧입는 의라는 주장은 잘못된 것입니다. 이신칭의의 교리는 마르틴 루터가 개신교라는 떡덩이에 넣은 괴악한 누룩입니다. 그가 주창한 이신칭의의 누룩이 칼빈과 웨슬리에게도 영향을 미쳤고, 결국 개신교 전체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순수한 교회가 되기 위해 이 누룩을 교회에서 제거해야 합니다.


신부동교회 강금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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