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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 11) 우리 죄를 담당하신 예수님 2017-11-05
작성자 강금성 조회수: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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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11) 이신칭의는 거짓된 교리라는 다섯째 증거 : 우리 죄를 담당하신 예수님



   복음은 예수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고, 우리의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것입니다(롬 4:25, 고전 15:3-4). 이 복음을 믿으면 하나님은 그를 죄의 종노릇에서 벗어나게 하고, 선한 일을 하는 사람으로 새로 지어 하나님을 향해 살게 합니다(롬 6:4-7, 갈 6:15, 엡 2:10). 그러므로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는 실제적인 의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개혁자들은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를 덧입는 의나 전가되는 의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는다고 주장했고, 교회는 이를 받아들여 이신칭의의 교리를 진리인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가 전가되는 의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예수께서 우리 죄를 담당하셨다.”는 것이 그 결정적 근거 중 하나라고 하며, 그 근거 구절로 이사야 53장 5절과 6절을 제시합니다. 

(사 53:5-6)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6)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켰다.”는 말씀은 하나님의 의가 전가되는 의인 것이 확실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러한 생각이 전도폭발훈련에서 제시하는 복음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전도폭발훈련에서 제시하는 복음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먼저 “만일 오늘밤에라도 이 세상을 떠나신다면 천국에 들어갈 것을 확신하고 계십니까?”라고 질문합니다. 
②그리고 복음을 제시합니다. 천국은 하나님이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임을 말하고, 그 근거구절로 에베소서 2장 8절과 9절을 제시합니다. “(8)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③다음으로 인간은 죄인이며, 죄인은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자비로우셔서 아무도 벌하시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것과 하나님은 의로우시기 때문에 우리 죄를 반드시 벌하셔야만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④그 다음 단계는, 예수께서 우리의 죄 값을 대신 치르시고, 우리에게 천국을 선물로 주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 근거구절로 이사야 53장 6절을 제시합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⑤마지막은 믿음의 결단으로 인도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무리의 죄악을 예수님께 담당시키셨으니,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모든 죄를 사함 받고 값없이 의롭다 함을 받아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사야 53장 6절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는 말씀이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가 전가되는 의라는 성경적 근거일까요? 이를 위해 우리는 다음 두 가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첫째, 이사야서 53장에서 여호와께서 우리 무리의 죄악을 담당하도록 한 ‘그’, 즉 ‘고난 받는 종’은 누구를 가리키는가? 예수님이 우리 죄를 담당하셨다는 것이 이신칭의의 성경적 근거가 되려면, 이사야가 말한 고난 받는 종은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야 합니다. 
   둘째, 신약에서는 이사야 53장 6절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는 말씀을 어떻게 이해하였는가? 예수님이 우리 죄를 담당하셨다는 것을 사도들이 어떻게 이해했느냐와 교회가 믿는 것은 일치해야 합니다. 교회가 믿는 것이 사도들이 증언한 것과 다르면 그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1. 이사야서에 나타난 ‘고난 받는 종’은 누구인가?

   고난 받는 종이 누구인가에 대한 지금까지의 연구결과는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포로후기, 즉 페르시아 왕 고레스의 해방령(주전 535년)에 의해 고국으로 돌아와 이스라엘 자손의 회복 운동을 주도한 ‘사로잡힌 자들의 자손들’을 이끈 지도자라는 것입니다. 이 입장을 가진 이들 중 다수가 고난 받는 종으로 스룹바벨을 지목합니다(J. D. W. Watts, 『이사야 하』(서울: 솔로몬 출판사, 2002), 369-385).

   둘째는 포로 후기의 유대인 전체를 가리킨다는 주장입니다. 2세기의 인물로 기독교에 비판적이었던 철학자 셀서스(Celsus)의 말에서 이러한 주장을 엿볼 수 있습니다. 기독교 교부인 오리겐(Origen of Alexandria, 185-232)이 셀서스와의 논쟁을 기록한 책 『콘트라 셀서스』(Contra Celsum)에 의하면, 오리겐이 이사야 53장을 인용하여 이사야의 예언은 예수를 가리키며 그의 대속적인 수난을 의미한다고 하자, 셀서스는 다음과 같이 반박했습니다(김창주, “유대교와 이사야 53장: 의인의 대속적인 고난을 어떻게 이해할까?” 『신학사상』 121집, 2003 여름, 120-21에서 재인용.). 

   이사야 53장의 예언은 한 개인을 지칭하지만 여러 곳에 흩어져 고난을 받고 있는 유대 민족 전체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는 열방 가운데 흩어져 있는 유대 민족이 고난을 받음으로써 많은 이방인들이 구원을 얻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셋째는 고난 받는 종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는 주장입니다. 오리겐의 글에서 이미 보았듯이 이는 초기 기독교 때부터 교회가 줄곧 취하고 있는 입장입니다. 

   이사야가 말하는 고난 받는 종은 누구일까요? 성경학자들은 이사야서에서 ‘고난 받는 종’을 묘사하는 본문으로 42:1-4, 49:1-6, 50:4-9, 52:13-53:12의 네 곳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 본문들이 말하고 있는 것을 종합해보면 고난 받는 종의 정체는 다음과 같습니다. 

①고난 받는 종은 한 개인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가리킵니다. 이사야 49:3절은 고난 받는 종을 가리키는 ‘너’를 이스라엘이라 합니다(49:3...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나의 종이요 내 영광을 네 속에 나타낼 이스라엘이라 하셨느니라). 따라서 고난 받는 종을 스룹바벨이나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한 개인으로 해석하는 것은 오류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②고난 받는 종은 이스라엘을 의미하지만 전체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것은 아닙니다. 이사야 49:6절은 ‘너’로 지칭되는 고난 받는 종은 이스라엘과 이방을 위해 모종의 역할을 하는데, 특히 이스라엘의 회복운동을 주도하며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돌아오게 합니다(49:6... 그가 이르시되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며 이스라엘 중에 보전된 자를 돌아오게 할 것은 매우 쉬운 일이라 내가 또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 그러므로 셀서스가 ‘고난 받는 종’을 유대민족 전체로 해석하여, 유대 민족이 받는 고난이 이방인들의 구원을 위한 것이라고 한 주장은 옳지 않습니다. 

③고난 받는 종은 과거에 많은 고난을 당했습니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고 질고를 아는 자입니다(50:6, 53:3). 그는 끌려감으로 인해 일정 기간 가나안 땅에 부재(不在)했고(53:8), 죽어서 그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었으며 부자와 함께 있었습니다(53:9). 이는 고난 받는 종이 당시 유대인 중에서 가나안 땅에 머물러 살고 있는 ‘그 땅의 백성’(암 하아레츠)은 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④그의 고난은 ‘우리’의 허물과 죄악 때문이며, 그의 고난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나음을 받습니다(53:4-6). 또 그의 고난은 ‘내 백성’, 즉 이스라엘을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53:8... 그는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으나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 하였으리요). 그러므로 고난 받는 종은 이스라엘 자손 중 일부이며, 그들이 받은 고난으로 인해 전체 이스라엘이 평화를 누리고 나음을 받습니다.

⑤현재 그의 모습은 많이 상하였고,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습니다(52:14, 53: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러므로 고난 받는 종은 당시 전체 유대인 중에서 더 많이 상한 유대인 그룹입니다.

⑥고난 받는 종은 장차 이방에 정의를 세우고(42:1), 그를 정죄하는 자는 여호와께서 그를 도우심으로 망할 것입니다(50:9). 그는 또한 받들어 높이 들려서 지극히 존귀하게 될 것입니다(52:13).

   이에 의하면 고난 받는 종은 스룹바벨과 전체 유대인,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중 누구도 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난 받는 종은 단수의 인물이 아니며, 전체 유대인도 될 수 없습니다. 그는 유대인 중의 일부에 속하며, 전체 유대인의 회복 운동에서 중심적 역할을 수행합니다. 그와 동시에 그는 과거에 다른 어떤 유대인 집단보다 더 많은 고난을 당했고, 끌려가 일정 기간 가나안 땅에 부재했으며, 현재의 모습은 다른 유대인 집단에 비해 초라합니다. 이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것은 바벨론에 사로잡혀 갔던 자들의 자손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주전 587년 유다의 멸망과 더불어 유대인의 상당수는 바벨론에 사로잡혀갔고, 다수의 유대인은 애굽으로 피난했으며, 이 두 지역 외의 다른 곳으로 흩어진 자들도 있었으며, 그 땅에 남아 있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들 중 고레스의 해방령이 내린 후 바벨론에 사로잡혀 갔던 유대인들이 고국으로 돌아와 이스라엘을 재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다른 유대인들, 즉 그 땅에 남아 있던 유대인들(암 하아레츠), 애굽으로 피난 갔던 유대인들, 다른 지역으로 흩어졌던 유대인들, 그리고 사마리아와 암몬 사람들이 시비를 걸었습니다. “너희는 죄를 많이 지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바벨론에 사로잡혀 갔던 사람들이 아니냐? 그런데 어찌 너희가 이 땅의 주도권을 가지고 회복 운동을 할 수 있느냐?” 그러자 선지자가 대답했습니다. 

(사 53:5-6)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6)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바벨론에 사로잡혀 간 사람들의 고난은 이스라엘 전체의 허물과 죄 때문이고, 그들의 고난을 통해 이스라엘 전체가 평화를 누리고 나음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2. 신약성경은 고난 받는 종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이사야가 말하는 고난 받는 종이 사로잡혀 갔던 자들의 자손을 가리키는 것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신약성경은 고난 받는 종과 관련된 이사야의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성취되었다고 합니다. 신약성경에서 이사야 53장 5-6절을 직간접적으로 인용하되, ‘담당하다’란 단어를 사용한 곳은 마태복음 8장 17절과 베드로전서 2장 24절 두 곳입니다. 우리가 주의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이사야의 예언이 성취되었다고 할 때 신약성경이 이사야의 예언을 어떻게 해석했는가를 살펴야 합니다. 고난 받는 종에 대한 이사야의 예언을 신약성경이 해석한 것을 따르지 않고 자기 나름대로 해석하여 교리를 재구성하는 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마태와 베드로가 이사야의 예언을 어떻게 해석하는지를 보겠습니다. 

1)마태복음 8장 17절

   마태는 8장과 9장에서 예수님의 다양한 치유 사역을 집중적으로 소개합니다. 예수님은 한 나병 환자를 깨끗케 하고(8:2-4), 중풍병으로 괴로워하는 백부장의 하인을 낫게 하며(8:5-13), 열병으로 앓고 있는 베드로의 장모를 고칩니다(8:14-15). 또 예수님은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다 고쳤습니다(8:16). 마태는 예수님의 이 치유사역을 소개하며, 그것들이 이사야의 예언을 성취하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마 8:17)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마태는 예수님이 우리 연약함을 담당하고 병을 짊어지셨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마태가 이사야서의 고난 받는 종을 예수님으로 해석했다고 해서, 이 구절이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기 때문에 덧입는 의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는 칭의 교리의 성경의 근거가 될 수는 없습니다. 

2)베드로전서 2장 24절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가 이사야 53:5-6절의 예언을 성취했다고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이사야의 예언과 관련시켜 해석합니다. 

(벧전 2: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베드로의 이사야 53:5-6절 해석은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로 마태는 예수께서 우리의 연약함과 병을 담당했다고 하는데, 베드로는 ‘우리 죄’를 담당했다고 합니다. 둘째로 베드로는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신 이유를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베드로가 이사야가 예언한 고난 받는 종을 예수 그리스도로 해석했다고 해서, 종교개혁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우리에게 의를 덧입혀주거나 의를 전가시켜 주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은 전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예수께서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고 우리 죄를 담당하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사도들의 터 위에 세운 교회도 베드로가 말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 우리가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되었다고 믿고 고백해야 할 것입니다. 

   베드로는 베드로전서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대하여 2장 24절 외에도 1:18-19, 3:18, 4:1-2절에서 언급합니다. 그는 이 구절들에서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왜 우리에게 복음인가를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①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우리를 헛된 행실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1:18-19)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19)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②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우리를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합니다. “(2:24 상)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③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죄 아래 있던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해 하나님을 위해 살게 합니다. “(3:18)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④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우리로 죄를 그치게 하며,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게 합니다. “(4:1-2)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는 죄를 그쳤음이니 (2)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이에서 보듯, 현대 교회에서 전하는 복음,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죄를 담당하셨으므로 예수를 믿으면 값없이 의롭다하심을 받는다.”는 속칭 ‘전가되는 의’로 의롭게 된다는 것에 대해서 베드로 사도는 그의 서신 어느 곳에서도 언급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반면에 현대 교회에서 선포하는 복음은 베드로 사도가 말하는 ‘헛된 행실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사는 것’, ‘죄의 종노릇하던 자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향해 사는 것’, ‘육체의 정욕을 따라 사는 것을 그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게 하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합니다. 사도들은 예수의 증인입니다. 베드로전서를 근거로 볼 때 현대 교회는 사도들이 말하는 복음의 내용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그들이 말하지 않은 다른 복음을 외치고 있는 것이 드러납니다.

   정리해 보면, 베드로 사도는 이사야 53장 6절의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란 말씀에 언급된 ‘고난 받는 종’을 예수 그리스도로 해석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현대 교회나 전도폭발훈련에서 말하는 것처럼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이 우리의 죄를 담당하고 죽으신 것이므로, 그를 믿는 자에게 의가 전가된다는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고 죄를 담당하셨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사야 53장의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는 말씀을 근거로 예수님의 죽으심이 우리에게 의를 전가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하는 것은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는 실제적인 의입니다. 

맺는 말 

1. 이사야가 예언한바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 53:6)에서 ‘우리’는 유대인 전체를 의미하고, 우리 모두의 죄악을 담당한 고난 받는 종인 ‘그’는 바벨론에 사로잡혀 갔던 사람들의 자손들로 고레스 왕의 칙령에 따라 가나안 땅으로 돌아온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이에 따라 이사야가 말한바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고 한 것은 사로잡혀 갔다 돌아온 사람들이 겪은 그 동안의 고난은 유대인 전체 백성의 죄악을 담당한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을 곧바로 인용하여 예수께서 우리 죄를 담당하고 죽으셨으므로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의가 전가되어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고 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2. 마태복음(8:17)과 베드로전서(2:24)에서 보듯 신약성경에서 사도들은 이사야가 말한 고난 받는 종의 사역이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진정으로 성취되었다고 증언합니다. 그러나 마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담당하신 것은 ‘우리의 연약함’이라 했고,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담당한 것이라 했는데,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즉 의를 덧입혀주거나 전가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죄의 종노릇에서 벗어나고 의롭게 살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저는 사도들의 증언이 진리인 것을 믿으며, 성경이 모든 신앙의 표준인 것을 믿습니다. 이에 따라 저는 그리스도께서 내 죄를 담당하셨고, 이로 말미암아 나는 죄에 대하여 죽었고 의에 대하여 산 자가 되었음을 믿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내 모든 삶의 현장에서 그 은혜가 내 안에서 역사하기를 사모합니다. 


신부동교회 강금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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