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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Me Too 운동을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2018-03-19
작성자 강금성 조회수: 6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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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Me Too 운동에 대해서 신부동교회 성도들을 대상으로 2018년 3월 18일에 행한 설교입니다. 필요로 하시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Me Too 운동을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요 8:3-11, 마 18:15-18절)
 

  오늘 말씀 제목은 “Me Too 운동을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입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Me Too’란 ‘나도’란 의미입니다. 한 사람이 힘을 가진 어떤 사람으로부터 성추행이나 성폭력을 당한 것을 세상에 폭로하고, 이에 다른 사람들이 “나도 당했다.”라고 연쇄적으로 폭로함으로써 가해자들의 실상을 폭로하고 약자의 인권을 지키려는 운동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한 여성 검사가 상사로부터 성추행 당한 것을 폭로한 것이 Me Too 운동의 기폭제가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후 시인이며 수차례 노벨상 후보로 거론된 국제적인 명사가 성추행을 일삼았다는 것이 폭로되어 모든 지위와 명예와 특권을 잃어버렸습니다. 그의 이름과 시는 교과서에도 실렸는데, 모두 삭제한다는 말이 들립니다. 그 다음은 연극계의 대통령이라 할 수 있는 사람이 가해자로 폭로됨으로써 그의 부끄러운 모습이 드러나고 추락했습니다. 배우이며 교수였던 한 사람은 학생들에 대한 엽기적인 행동들이 폭로되었고, 그로 인해 그는 교수직을 잃고 무거운 짐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매 죽었습니다. 천주교 수원교구의 한 신부는 선교 여행 중 한 신도를 폭행했다는 것이 폭로되고, 몇몇 목사와 스님들도 폭로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Me Too 운동은 점점 확산돼 이젠 중학교 학생들이 선생님에 의해 성추행 당한 사건들도 폭로되고 있습니다. Me Too 운동은 현재 교육 문화 예술 정치 종교 등 각 방면에 들불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이번 기회에 힘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자행되던 성추행이나 성폭력이 절대로 해서는 안 될 범죄라는 것이 사람들에게 인식되고, 그로 인해 정결하고 건강한 우리 사회가 되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1896년 미국 캔자스 주 토페카에서 목회하던 찰스 M. 쉘돈 목사는 전기공의 복장을 하고 돌아다니며 경험한 바를 『In His steps』란 제목으로 책을 펴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1982년에 『예수라면 어떻게 했을까?』란 제목으로 출판되었습니다. 그 책에서 쉘돈 목사는 사람들, 특히 그리스도인들에게서 본 충격적이고도 실망스러운 모습들을 보여줍니다. 그가 만난 그리스도인들 대부분은 사는 모습이 세상 사람들과 전혀 다를 바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 책은 그리스도인들이 무심코 행하던 일들에 대해서 “예수라면 어떻게 했을까?”란 관점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면서 세상 풍조를 따라 행동하는 것은 정말 큰 문제입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2장에서 허물과 죄로 죽어 있는 사람의 행동방식에 대해 말하며, 그 중 하나를 ‘이 세상 풍조를 따라 행한다.’는 것을 지적했습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이 문제에 대해 성경은 어떻게 말씀하는가?”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은 무엇일까?”를 묻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야 합니다. Me Too 운동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라면 Me Too 운동을 어떻게 하셨을까요? 

1. Me Too 운동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것일까? 그러므로 계속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뜻이 아니므로 당장에 그만 두어야 할 것인가?
2. 계속해야 한다면 지금 이 방식대로 계속 진행해도 되는가? 아니라면 어떤 방식으로 진행해야 할 것인가? 

  저는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요한복음 8:1-11절과 마태복음 18:15-18절을 나누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이 두 본문은 범죄한 자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예수님이 직접 가르쳐주신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8:1-11절의 말씀을 하신 상황은 이렇습니다(요 8:3-5).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음행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이 여자는 음행 중에 잡힌 여자입니다. 모세는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했는데, 선생님은 어떻게 하라 하시겠습니까?” 이 상황은 현재 Me Too 운동으로 가해자로 드러난 이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 것인가를 보여주는 좋은 본문이 분명합니다. 

  다른 본문인 마태복음 18:15-18절은 15절에 “(15)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전제로 주신 말씀입니다. 힘을 가진 이들이 힘없는 자들의 약점을 이용해 성추행과 성폭력이라는 범죄를 저지를 때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1. 요 8:3-11절이 Me Too 운동에 주는 세 가지 교훈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5)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하고 물었을 때 예수님은 어떻게 대답하셨을까요? 8:6-11절을 보겠습니다. 
 
(요 8:6-11) 그들이 이렇게 말함은 고발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7) 그들이 묻기를 마지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이르시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8)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9)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10)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11)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대답을 재촉하는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은 특이한 행동을 하셨습니다. “(6절)...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그들이 계속 대답을 요구하자 예수님은 “(7절)...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는 말씀을 하시고는 다시 손가락으로 땅에 쓰셨습니다. “(8)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얼마 후에 보니 사람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고발하던 자들도 돌로 치려고 함께 왔던 자들도 다 없어졌습니다.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는 말에 양심에 가책을 느껴 모두 나가버린 것입니다. 여자를 정죄하고 돌로 칠 수 있는 죄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여자 홀로 남은 것을 보신 예수님이 말씀합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이 말씀은 미투 운동에 대하여 다음 세 가지를 말합니다. 

1) 세상을 새롭게 하려면 지금과는 다른 법과 질서를 세워야 합니다.

  현장에서 간음하다 붙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5)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라고 묻는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이 하신 일은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쓴’ 것입니다. 계속해서 묻는 사람들을 향해 예수님은 “너희 중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 하시고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셨습니다. “너희 중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라는 말씀 앞과 뒤로 예수님이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신 행동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묻는 사람들 앞에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쓴 행동은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율법을 돌 판에 새긴 행동을 떠오르게 합니다(출 24:12, 32:16, 34:28). 하나님은 바로의 종노릇하던 이스라엘 자손을 건져 내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율법을 기록한 돌 판을 모세에게 주셨고,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해 준 율법은 그들의 삶을 지배하는 새로운 법과 질서였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와서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하고 물을 때 예수님은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씀으로써 그들에게 새로운 법과 질서를 부여합니다. 모세는 “간음한 여자는 돌로 치라.” 하였지만, 예수님은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는 것입니다.

  간음은 돌로 쳐 죽여야 할 가증한 죄입니다. 남편 있는 여자가 어찌 다른 남자와 동침을 하며, 아내 있는 남자가 어찌 다른 여자와 불륜을 저지를 수 있습니까? 선생이며 지도자인 사람들이 어찌 어린 학생들과 제자들을 성추행하며 성폭력을 행할 수 있습니까?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일이며, 돌팔매질을 해서 우리 사회에서 제거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아무 부끄러움 없이 돌팔매질할 자격을 갖춘 이가 있습니까? 예수님은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하셨습니다. 가증한 죄를 범한 사람들이 폭로되고 그들의 가증하고 부끄러운 모습이 들추어지는 지금, 양심에 아무 가책 없이 돌로 칠 사람이 있습니까? 혹 있다면 그는 먼저 돌로 칠 자격이 있습니다. Me Too 운동을 보는 어떤 이 중에 이렇게 말하는 이도 있습니다. “아직 드러나지 않은 사람이 이미 드러난 사람을 난도질하고 있다.”

  기자들은 누군가 성추행을 했거나 성폭력이 의심되는 사람이 드러나면 가차 없이 지상에 폭로합니다. 그러면 언론은 그걸 문제 삼아서 연신 비판하고 난도질합니다. 그러한 기사를 본 우리 사회 불특정 다수는 가해자에 대해 무차별적으로 정죄하고 공격합니다. 우리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시민들 중에 아무 죄가 없어 돌로 칠 사람이 있습니까? 모세는 돌로 치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 없는 지금까지의 법과 질서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님을 아는 우리들에게는 새로운 법과 질서가 요구됩니다. “너희 중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2) 죄를 범한 사람에게도 새 출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 앞에서 여자를 정죄하는 이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여자를 돌로 치려고 왔던 사람 중에 죄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그 여자를 정죄하지 않고 돌려보냈습니다. 새 출발의 기회를 제공한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Me Too 운동은 가해자에게 곧바로 종말을 선고합니다. 우리 사회 분위기는 그런 더러운 짓을 한 사람은 “우리 사회에서 매장되어야 마땅하다.”고 여기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 중에도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고 공의로운 분이기 때문에 추악한 짓을 한 사람은 사회에서 매장되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나온 생각입니다. 누군가 범죄했고, 그로 인해 사람들이 정죄할 때 예수님은 그때마다 늘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마 9:13)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은 제사를 원치 않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제사도 원하고 긍휼도 원하지만, 제사와 긍휼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할 때는 제사보다 긍휼을 원한다는 의미입니다. 간음을 한 여자를 돌로 쳐 제거함으로써 그들 사회를 정결케 하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제사 행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지금 이 현장에서 원하는 것은 간음하다 붙잡힌 여자에게 긍휼을 베풀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Me Too 운동에는 제사는 있지만 긍휼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누군가 가해자로 드러나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돌을 들어 칠뿐입니다. 하나님은 제사보다 긍휼을 원하십니다.  

3) 다시는 죄를 범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새 출발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해서, 가해자가 성추행과 성폭행을 계속 할 수 있도록 그냥 놔두고 보라는 말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죄를 범한 여자에게 새 출발의 기회를 주면서도 다시는 그 죄를 범지 말도록 했습니다(요 8:11). 

  이 땅에서 힘 있는 사람에 의해 힘없는 사람들이 짓밟히고 피해를 입는 일이 계속되어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성 추행이나 성 폭력은 근절돼야 합니다. 무엇보다 우리 사회는 자기와 관련되지 않은 일이라면 성 추행이나 성 폭력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풍조가 있습니다. 힘 있는 남성들 중에는 부하 직원이나 여성들을 성희롱하는 것을 특권으로 생각하는 의식을 가진 이들이 있습니다. 청년들 중에는 자신의 성 추행이나 성 폭력 행위를 친구들 앞에서 영웅담 늘어놓듯 하는 풍조도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우리 조상들이 물려준 헛된 행실 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조상들로부터 많은 여자를 거느린 것을 “여복이 많다.”고 듣고 자랐습니다. 또 “영웅호걸은 여자를 좋아한다.”는 말도 전해 들었습니다. 이러한 말들은 출세한 남자는 성추행이나 성폭력을 할 자격이 있다는 의식을 심어주기에 충분합니다. 이번 미투 운동을 통해 이런 잘못된 의식까지 뿌리 뽑혀야 합니다. 


2. 예수님이라면 Me Too 운동을 어떻게 하실까요?
  
  Me Too 운동이 계속되고 있는 현재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Me Too 운동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이들도 있는 듯합니다. 어떤 이들은 Me Too 운동에 대해 음모론을 제기합니다. “진보 세력을 와해시키기 위해 특정 세력이 꾸민 음모다.” 또 어떤 이들은 피해를 입은 사실을 폭로한 피해자의 신상털기를 합니다. 그 결과 꽃뱀이다 뭐다 하면서 마구잡이식으로 비난합니다. 이에 폭로자들은 2차 피해를 호소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가해자를 비판하기보다 피해자를 집중적으로 비판하기도 합니다. 이런 일들은 피해자들로 피해 사실을 폭로하는 것을 두렵게 함으로써 결국 Me Too 운동을 중단시키게 할 우려가 있습니다. 이에 어떤 이들은 “어떤 일이 있어도 Me Too 운동은 지속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이번 기회에 힘 있는 자들에 의한 성 추행이나 성 폭력이 우리 사회에서 근절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뜻은 무엇일까요? Me Too 운동은 계속돼야 하는 것일까요? 그만 둬야 할 것일까요? 계속 해야 한다면 어떤 제도적 보완을 해야 할까요? 마 18:15-18절을 보겠습니다.  

(마 18:15-18)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16) 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하게 하라 
(17)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1) 현장에서 피해를 입게 될 위험에 놓였을 때의 행동

  가해자에 대해 피해자가 취할 행동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15절)는 것입니다. 이는 피해를 입게 될 위기에 처했을 때 취할 행동을 보여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피해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두 가지 공통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는 피해자들은 대부분 가해자가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사전에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기 입장에서는 감히 거부할 수 없는 관계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자기는 그러한 행위가 싫었고, 가해자에게 분명히 거부 의사를 밝혔는데, 가해자에 의해 당했다는 것입니다. 피해를 입은 것은 몹시 안타깝고 가슴 아픈 일입니다. 그러나 피해자들의 그 말 속에는 두 가지 아쉬운 점이 보입니다. 

  첫째는 거부의사를 표하는 방식입니다. 거부의사를 표할 때는 ‘정색하고’ 해야 합니다. 가해자가 범행이 충분히 예상되는 시간과 장소로 자신을 부르면 여지를 남겨두지 말고 거절해야 합니다. “죄송합니다. 내일 날이 밝을 때 학교에서 혹은 직장에서 뵙겠습니다.” 하고 전화를 끊습니다. 혹시 계속해서 전화가 오면 전화기를 꺼놓습니다. 직장 내에서 힘을 가진 이가 성추행을 하려 할 때에는 정색하고 거부의사를 표해야 합니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하고 벌떡 일어나 가해자의 낯이 뜨뜻할 정도로 정색하고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계속되면 잠시라도 그 자리를 떠야 합니다. 잊지 마십시오. 정색하고 차갑고 단호하게 거부해야 가해하려는 사람은 뜻을 포기합니다. 

  또 한 가지 아쉬운 것은 피해자들은 가해자와의 관계로 인해 자기는 거부할 수 있는 입장이 못 된다고 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성 추행이나 성 폭력이 명백히 범죄인 것을 안다면 상대방이 누구인들 거부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가 하나님을 주로 섬기지 않고 사람을 주로 섬기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주로 삼은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뜻이면 “예”하고,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아니요.”라고 분명히 말합니다. 예수님은 (마 23:10)에서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의 지도자는 한 분이시니 곧 그리스도시니라”고 하셨습니다.  

  “거부하면 그로 인해 불이익을 당할 것인데 어떻게 거절할 수 있습니까?” 하고 변명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손해 보더라도 거절할 것은 거절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주로 섬기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느냐의 여부가 잘되고 못되는 것을 결정한다는 믿음 아래서 행동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주로 섬기는 사람들은 ‘옳고 그름’이 행동기준이지, ‘손해나 이익’이 행동기준이 아닙니다. 거부한 것으로 인해 손해를 입는다면 손해를 받아들이십시오. 하나님이 그런 사람을 그냥 버려두실 줄 압니까? “나는 거절할 수 없는 위치입니다.”라는 말은 그가 하나님을 믿지 않고, 그 마음에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기 때문에 나오는 어리석은 말입니다. 

2) 상습적인 성 범죄자는 다른 사람의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16) 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하게 하라 

  단호하게 거절했는데도 가해자가 자기에게 계속 성추행을 하려 합니다. 또 정색하고 거절한 까닭에 더 이상 나에게는 그런 짓을 하지 않지만 다른 사람에게 같은 짓을 계속 합니다. 그때는 신뢰할 만한 한두 사람에게 이를 말씀드리고, 그들과 함께 가해자를 찾아가 그의 잘못을 지적하고 경고하라는 것입니다. 혹 직장에서 과장이 가해자라면, 그 윗선에 있는 신뢰할만한 분에게 그 사실을 알려서 함께 경고하는 것입니다. 

  성범죄는 추악한 범죄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추악한 범죄자가 그 죄에서 벗어나 구원받기를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심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더 이상 죄로 인해 파멸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요 12:47). 악을 행하는 사람이 그 악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우리는 노력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단호하게 말하고, 그래도 듣지 않으면 한두 사람의 도움을 받아 함께 권면하고, 그래도 범행을 계속하면 그때 폭로하십시오. 

(17)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이 말씀은 현재의 Me Too 운동에 대해서 다음 두 가지 사실을 말합니다. 첫째, Me Too 운동은 성경적입니다. 범죄하는 이가 권면을 받아들이지 않고 그 범행을 계속할 때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는 것은 ‘출교하라’는 의미인데, 그 사회에서 축출하라는 것입니다. Me Too 운동은 하나님의 뜻과 일치합니다. 그런 행악자를 우리 사회가 계속 방치해서는 안 됩니다. 개인적으로 권하고, 듣지 않으면 한두 사람에게 말해 함께 권면하고, 그래도 듣지 않으면 사회 전체에 폭로해서 그를 사회로부터 격리하라는 것입니다.  


맺는 말

1. 향후 전망   

  현재 Me Too 운동이 거세게 일어나고 있으나, 성추행이나 성폭력의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폭로가 실제 피해 건수에 비해 빙산의 일각도 되지 않을 것입니다. 연극계의 한 인사가 “왜 연극계에서 유달리 폭로가 많은가?”에 대해 이런 답을 내놓았습니다. “연극계에서는 피해자가 자신이 피해 입은 사실을 폭로해도 별로 잃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 말을 뒤집어보면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뭔가 잃을 것이 두려워 폭로하지 못할 사람들이 매우 많다는 의미입니다. 그런 이유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폭로의 열풍은 잠잠해지고 틈틈이 폭로가 되겠지만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러나 Me Too 운동은 결코 없어져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은 “(마 18:17)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두세 차례 권면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악에서 돌이키지 않는 사람은 폭로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향후 Me Too 동이 지금처럼 광범위하게 진행되지 않을지라도 틈틈이 폭로됨으로써 우리 사회에서 성추행이나 성폭력을 하는 이는 파멸 당한다는 인식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2. 현재의 Me Too 방식은 수정보완이 필요합니다. 

  폭로의 대상은 두세 차례 절차를 거쳐 회개할 기회를 주었는데도 동일한 범죄를 계속하는 악질적인 경우라야 합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경우는  폭로하는 것을 깊이 고려해봐야 합니다. 오래 전 단순히 우발적으로 일어났고, 그 후로는 가해자가 바른 삶을 살면 피해자는 그를 용서하고 덮어주는 것이 폭로하는 것보다 잘하는 것입니다. 또 피해를 당했으나 가해자가 권면을 받아들여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바른 삶을 살겠다고 할 때 그를 용서하고 덮어주는 것이 폭로하는 것보다 더 선입니다. Me Too 운동은 우리 사회에서 성추행이나 성폭력의 범죄를 근절시키려는 것이지 처벌이나 보복을 위한 것이어서는 안 됩니다. 

신부동교회 강금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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