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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나님께 상달되지 않는예배와 찬송을 하지 말자 2018-05-21
작성자 이윤형 조회수: 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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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를 위하여 찬양을 철저하게 준비하자
먼저 찬양의 대상이 누구인지를 명확하게 알아야 한다. 온전한 예배는 모든 목적이 하나님이기에 우리가 드리는 찬양의 대상 또한 하나님이시다. 하지만 예배 속에서 드리는 찬양을 보면 하나님을 목적으로 두고 하는 찬양인가 의심스러울 때가 많다. 
사람의 귀를 즐겁게 해주는 것에 목적을 두는 음악회를 보면, 음악을 듣는 관객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연주자들은 철저하게 준비한다. 악보의 한 장, 마디의 한 음표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손가락이 부르트고 허리가 끊어질 듯한 고통 가운데에서도 완벽하게 준비한다. 혹여나 공연 당일 연주자의 갑작스러운 변동사항까지 고려하여 예비 반주자까지 준비한다. 
사람이 목적이 되는 음악회도 이처럼 철저한 준비가운데 이루어지는데 예배 가운데서 하나님을 목적으로 하는 찬양은 어떻게 하는지? 
성가대의 경우 / 예배 전 한 시간 맞춰 보고 찬양의 자리에 서는 경우가 교회의 현실임을 감안할지라도, 대곡이 아니라 찬송가로 준비한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성가대원들이 미리 연습을 해 온다거나 가사의 내용을 마음에 담고 기도로서 그 찬양의 목적이 되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준비해야 한다. 찬양 곡을 선곡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흔히 찬양인도자들이 범하기 쉬운 실수는 자신에게만 은혜가 되는 찬양을 가지고 올라가 혼자만 은혜 받고 내려오는 경우가 많다. 설교도 청중을 고려한 설교로 준비하는 것처럼 찬양 또한 청중, 예배 시 함께 찬양할 대상을 고려하여 선곡해야 한다. 
그럴 때 찬양인도자뿐만 아니라 모두가 함께 은혜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예배 전 찬양인도자의 찬양이 은혜가 되면 예배 전체가 은혜가 된다. 먼저 그 은혜의 찬양을 통해 설교자도 은혜가 되고, 동시에 성도들도 은혜에 젖어들게 된다. 하나님의 임재가 있고, 하나님의 위로하심이 있을 것이다. 
‘찬양은 설교만큼이나 중요하다’는 마음의 자세가 필요하다. 많은 분들이 예배 중에서 중요한 순서들을 꼽을 때 설교를 꼽는다. 물론 틀린 말이 아니며, 개혁주의 예배에서 설교의 중요성은 그 어느 것보다 강조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찬양도 설교만큼이나 중요하다. 하나님께서는 찬양가운데 거하시기에 찬양을 습관적으로나 감정을 따라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설교를 준비하는 것과 같이 찬양을 하는 사람들 자신이 얼마나 중요하고 거룩한 일에 드려지는가를 자각하고 최선으로 준비하여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 예배에 드려져야 하는 찬양에는 송영, 경배, 찬양이 주를 이루어야 하겠지만 회개와 경건을 위한 기도와 간구, 평안과 위로, 전도와 선교, 예식에 대한 곡도 많다. ‘거룩 거룩 거룩 전능하신 주님’(8장)도 있지만 ‘천부여 의지없어서 손들고 옵니다’(280장)도 필요하다. 
나의 견해는 경배 찬송을 부르기 전에 죄를 씻는 회개가 선행되어 하나님께 죄사함과 더불어 한량없으신 긍휼을 통하여 영광을 돌리는 찬양으로까지 이어져야 한다. 가인처럼 예물만 들고 나와 받아달라고 하지말고 예배 시간 전 일찍 나와서 회개와 더불어 거룩하게 살도록 하나님께 눈물로 간구기도를 드려야 하지 않겠는가?
누가복음 18:13처럼 감히 하늘을 우러러 볼 생각도 못하고 슬픔에 잠겨 가슴을 치며 ‘하나님, 이 죄인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라는 찬양을 눈물로 드렸다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실까? 하나님께서 그 회개 찬양기도를 들으시고 기뻐하시면서 은혜를 주실 것이고 그로 인해 다시 감사의 찬양과 영광의 찬양을 드리지 않겠는가 말이다. 그런데 회개와 눈물의 기도 없이 ‘하늘에 가득한 영광의 하나님 … 우리 예배를 받아주시옵소서’(9장)라고 한다면 과연 그 찬양이 하나님께 상달된다고 할 수 있을까? 
이런 모습은 집으로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돌아온 둘째 아들의 비유에서도 잘 알 수 있다.
둘째 아들이 어떠한 마음을 가지고 돌아왔는가? / 눅 15:17-19 그제서야 제정신이 든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아버지가 계신 집에는 일꾼들까지도 양식이 풍족하여 먹고도 남는데 여기서 나는 굶어 죽겠구나! 18)아버지께로 돌아가 이렇게 말씀을 드려 봐야겠다. 아버지. 저는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19)그러니 이제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도 없습니다. 저를 일꾼으로라도 써주십시오.
이런 아들을 본 아버지의 모습이다 / 눅 15:20-24 … 아들이 멀리서 걸어오고 있는 것을 본 아버지는 측은한 마음에 달려가 아들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었다. 21)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아버지, 저는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니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도 없습니다.' 22) 그러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말하였다. `빨리 집안에서 제일 좋은 옷을 꺼내다가 내 아들에게 입혀라. 그리고 보석 반지를 끼워 주고 신을 신겨라. 23) 또 살진 송아지를 끌어내다가 잡아라. 잔치를 열고 기쁨을 나눠야겠다. 24) 죽었던 내 아들이 다시 살아왔다. 그를 잃었다가 찾은 것이다.' 그래서 잔치가 시작되었다.
그러므로 예배를 드리기 전에 ‘샘물과 같은 보혈은 주님의 피로다 … 저 도적 회개하고서 보혈에 씻었네 저 도적 같은 이 몸도 죄 씻기 원하네’(258장)라는 찬송들을 통해 눈물로 죄를 씻겨주시기를 위해 간구기도와 찬양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하여 예배 시간 전에 철저히 회개기도로 영광을 돌리기 위해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아니면 예배시간에라도 회개를 하며 하나님의 은총을 간구해야 하지 않겠는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는 로마서의 말씀을 대입시켜 보자. 바리새파 사람처럼 ‘하나님, 나는 다른 사람들과 같은 죄인이 아닙니다. 더욱이 저기 있는 세관원과 같은 죄인이 아닌 것을 얼마나 감사한지요! 나는 절대로 남의 것을 강제로 빼앗은 일도 없고 간음한 일도 없습니다. 나는 한 주일에 두 번씩 금식을 하고, 내가 얻은 모든 것의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고 있습니다.’(눅 18:11-12)라는 식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면서 그 찬양은 가인의 예배처럼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실 것이다. 
그러나 세리의 기도와 같이 감히 하늘을 우러러 볼 생각도 못하고 슬픔에 잠겨 가슴을 치며 ‘하나님, 이 죄인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하고 눈물로 기도를 드린다면 믿음의 사람 아벨과 같이 그와 그가 드린 예배가 하나님께 상달되어 용서와 더불어 긍휼의 은총을 얻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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