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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 14) 사도 바울의 믿음 2018-06-11
작성자 강금성 조회수: 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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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14) 믿음으로 살리라(Ⅱ): “사도 바울의 믿음”(빌 3:1-16절)


  교회에서 신앙지도를 할 때 가장 흔하게 듣는 말은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받았으니 하나님 말씀대로 사세요.” 이에 따라 열심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을 읽고 성경 말씀대로 살고자 노력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지극히 당연해 보이지만 매우 잘못된 신앙방식입니다. 복음으로 시작했다가 율법으로 마치는 것이고, 하나님의 열심을 의지하지 않고 자기 열심으로 신앙생활을 하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올바른 신앙생활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요?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1. 그리스도를 알고 친밀한 사귐을 가짐(7-9a)

  올바른 신앙생활은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와 친밀한 사귐을 갖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안다는 것은 성경을 읽거나 다른 사람으로부터 들어서 ‘그리스도에 관해서’ 아는 것이 아니라, 경험적이고 인격적으로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사람은 많지만 그들 모든 사람과 가까이 교제하며 지내는 것은 아니듯, 그리스도에 관해서 아는 것과 그리스도를 아는 것은 다릅니다. 복음에 합당한 삶은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와 친밀한 사귐을 갖는 것입니다. 그래야 복음의 능력이 내게 나타납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에게 유익하던 것을 다 해로 여겼고,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이는 그가 그리스도를 알고, 그 안에서 발견되기 위해서였습니다. 

(7-9a)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8)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9)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8절을 보면, 바울은 “(8)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것’, 그것만큼 가치 있고 고상한 것은 없습니다.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과 친밀한 사귐을 갖고 사는 사람은 변화되어, 의롭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을 깊이 사귀며 알아 가면, 세상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누구나 알게 됩니다. 

  제가 중학교 3학년 때의 일입니다. 동급생 중 하나가 등록금을 내야 할 때가 되었는데 내지를 않았습니다. 선생님이 집으로 연락을 했더니 부모님은 줬다고 했습니다. 선생님이 그 친구를 불러 등록금을 어디에 썼느냐고 다그쳤지만 좀처럼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이 회초리로 때리니 마침내 개미만한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잘 들리지 않았습니다. 몇 차례 회초리가 더 가해지고서야 겨우 알아듣게 여자 친구에게 바지를 사줬다고 했습니다. 그때 저는 등록금으로 여자 친구에게 바지를 사준 것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좀 더 커서 특정한 사람을 알게 되었을 때, 그때 그 친구의 심정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내게 있는 모든 것을 주더라도 아깝지 않을 만큼, 그 사람을 알게 되면서 내 삶은 풍성하고, 들뜨고, 아름답고, 행복하게 되었습니다. 수많은 남자 중에 나란 사람이 눈에 띄어 나만을 사랑하고,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버리고 내게로 훌쩍 날아와 자기 인생을 맡기는 사람을 얻게 된 것, 그것처럼 큰 행복이 어디 있습니까? 내가 알고 사랑하며, 그가 나를 알고 사랑하는 것, 그래서 저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정결한 남편으로 살려 애쓰고, 상대방이 기뻐하는 모습을 갖추려 노력합니다. 

  신앙생활은 이렇게 합니다. 복음에 합당한 삶은 예수님을 아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얻고, 내가 예수님에게 발견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사귐이 시작되고, 예수님을 더 깊이 알아갈수록 더 거룩해지고 더 풍성해집니다.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를 알기 원했습니다. 그래서 이전에 있는 굉장한 것들일지라도 그리스도를 얻는 일에 방해가 된다면 배설물처럼 버렸습니다. 복음에 합당한 삶은 첫째, 예수님을 아는 것입니다. 둘째, 예수님을 얻는 것입니다. 셋째, 예수님에게 발견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과 깊은 사귐 속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2.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에 참여하는 것(10-14절)

1)복음에 합당한 삶은 그리스도의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10)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11)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그리스도의 고난(죽음)에 참여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의 권능을 알고자 하는 것은 자신이 그리스도의 부활에 연합하여 하나님을 향해 산 자가 되고, 선한 일을 하는 사람으로 새로 지음을 받고자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십자가와 부활의 권능이 자기에게 임하기를 사모했습니다. ‘참여하다’의 헬라말 ‘코이노니아’는 흔히 ‘교제’란 뜻으로 쓰이지만, ‘참여’ 혹은 ‘분배’의 의미가 강하게 들어 있는 단어입니다. 즉 그리스도의 고난(죽으심)에 함께 참여하고, 그리스도의 부활의 권능을 자신도 직접 참여해 경험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참된 신앙입니다. 결국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고자 했습니다. 그것이 바른 신앙입니다. 

2)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 참여하는 것은 단 일회적 사건이 아니라, 날마다 지속되어야 할 것입니다. 

  몇 년 전입니다. 제가 부산에 있는 한 교회에 초청을 받아 부흥회를 인도하고 돌아왔습니다. 얼마가 지나 부산에서 한 분이 제게 메일을 보내왔습니다. 그 분은 아마도 부흥회 때 말씀을 통해 은혜를 받았던 모양입니다. 우리 교회 까페에 가입을 하고 계속해서 제가 전한 말씀을 듣다가 궁금증이 나서 메일을 보냈습니다. “목사님, 지난 번 부흥회 때 우리가 복음을 믿으면 죄에 대하여 죽었고, 하나님께 대하여 산 자가 되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제가 그렇게 말씀을 전했죠. “그런데 목사님, 이번 주 말씀을 전하시고 통성으로 기도하실 때, 목사님은 왜 또 나를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부활에 연합하여 하나님께 대하여 산 자가 되게 하소서. 그렇게 기도하십니까?” 한 번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고, 산 자가 되었으면 그것으로 끝이 아닌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는데 왜 또 반복하는가 하는 그런 말입니다. 12-14절을 보겠습니다.

(12)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13)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12절을 보면, 하나님의 의는 앞으로 이루어질 미래적인 것입니다. “(12)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현대 교회에서는 하나님의 의를 전가되는 의나 덧입히는 의라고 주장하는데, 그렇다면 그 의는 이미 얻은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자기가 가진 의는 이미 얻은 의가 아니라 앞으로 얻게 될 의라 합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의가 전적으로 미래에 이루어질 것만은 아닙니다. 12절의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는 구절을 볼 때,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의를 이미 경험했으며, 어느 정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온전한 것이 아니어서 앞으로 온전해져야 할 의입니다. 역시 하나님의 의가 전가되는 의나 덧입히는 의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의는 미래에 이루어질 것이라고 해서 마지막 심판 때에 이루어질 종말론적인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의가 미래에 이루어질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들 대부분은 그 의가 ‘마지막 심판 때에’ 이루어질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바울 사도는 하나님의 의를 얻으려고 지금도 달려가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여 “너는 의롭다”고 과거에 법적으로 인정받았으면, 바울이 하나님의 의를 얻으려고 달려가겠다고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13절을 보면,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의를 “잡은 줄로 여기지 않는다.”고 합니다.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달려간다고 합니다. 이는 그가 십자가와 부활의 권능에 의해서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의를 경험했고 가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과거에 얻은 의는 그에게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이제까지 십자가의 권능에 참여하여 죄를 이겨왔고, 부활의 권능에 참여하여 선을 행했을지라도 그것은 잊어버려야 할 것입니다. 이미 경험한 의는 뒤에 있는 것이며, 잊어버려야 할 의입니다. 하나님의 의는 오늘과 내일의 삶에서 복음의 권능에 의하여 이루어질 의를 잡으려고 달려가야 할 성질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는 과거, 현재, 마지막 심판 때... 이런 식으로 어느 특정한 시점에 이루어질 것이 아니라, 복음을 알게 되면서부터 과거로부터 시작해 현재에 이르기까지 계속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또 현재로부터 시작해 미래에, 그리고 주님 오실 때까지 계속 이루어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지는 것은 어느 점이 아니라 계속되는 선이 되어야 합니다.

(고전 15:31)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우리는 날마다, 시시각각으로 십자가와 부활의 권능에 참여해서, 그 복음의 능력이 내게 나타날 수 있도록 달려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의는 이미 얻은 것이지만, 미래에 이루어질 것이기도 합니다. 또 미래에 이루어질 것이지만 최후 심판 때에 이루어질 것이 아니라, 지금을 기준으로 바로 앞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맺는 말 

  복음을 듣고 믿은 후 우리는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야 할까요? 복음에 합당한 삶은 어떤 것일까요?

1. 육체를 신뢰하지 마십시오. 내가 누구이며, 내 아버지 어머니가 교회에서 어떤 사람이고, 내가 주를 위해서 그동안 어떻게 일해 왔으며, 어떤 열심을 가지고 있었을지라도 그것을 신뢰하지 말아야 합니다. 참된 신앙의 모습은 이것입니다. 

(빌 3:3)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

2.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를 얻고, 그리스도에게 발견되려 하십시오. 예수님을 아는 것은 사람마다 그 깊이가 다 다릅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를 위해 기도할 때 다음과 같은 기도를 드렸습니다. 

(엡 1:17-19)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18)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19)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지혜와 계시의 영은 성령입니다. 성령님이 임하시면 예수님을 알게 합니다. 예수님에 ‘관해서’ 아는 것은 성경을 통해서 얼마든지 알 수 있고, 목사님이나 교사를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사적(私的)으로 아는 것은 성령님을 통하지 않고는 불가능합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였고, 여러분은 복음이 무엇인가를 알았습니다. 또 한 번의 과정이 필요한데, 그 과정은 성령님께서 직접 여러분에게 복음이 무엇인가를 가르쳐주셔야 합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을 알게 하고, 예수님의 부활을 알게 하는 성령님의 일하심이 있어야 합니다. 그때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예수님을 알게 됩니다. 아주 사적인 만남들이 일어나고, 예수님과 특별한 관계를 쌓아가기 시작하면 그 속에 생수의 강이 흐릅니다. 

3. 이렇게 신앙생활을 해 보십시오. 

  아침에 일어나서 “예수님, 사랑합니다.”라는 고백을 함으로 하루를 시작해 보십시오. 그리고 순간순간 그 고백을 계속해 보십시오. 좋은 일이 있으면 “예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라고 하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면 “예수님 사랑합니다. 저를 긍휼히 여겨주세요.”라고 하십시오. 매일 “예수님, 저는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고, 예수님과 함께 새롭게 산 자가 된 것을 믿습니다. 오늘도 제 안에서 십자가의 권능과 부활의 권능이 나타나게 하소서.”라고 기도하고, “예수님을 알기 원합니다. 제가 예수님을 더 알기 원합니다.” 이렇게 구하며 주님께 나아가도록 하십시오. 그리하면 당신은 의와 평강과 희락으로 충만한 하나님 나라가 임한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롬 14:17).   


신부동교회 강금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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