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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우리 모두 ‘내가 너와 함께 가리라’는 음성을 … 2019-01-25
작성자 이윤형 조회수: 89
첨부파일   20190127.hwp |  
우리 모두 ‘내가 너와 함께 가리라’는 음성을 … 
2019년 1월 27일 / 창세기 46:1-7
■ 장애인 레나 마리아라는 스웨덴 여인으로 『발로 쓴 내 인생의 악보』라는 책을 썼다. 1968년 스웨덴 중남부에서 태어날 때부터 두 팔이 없고 한 쪽 다리가 짧은 중증 장애인이었다. 부모님은 심각하고 어려운 선택을 해야만 했다. 의사는 말했다. “부모님들께서 직접 돌보시겠다면 최소한 20년 이라는 세월을 염두에 두셔야 합니다.” 출산으로 지치고 통증을 완화시키기 위한 주사로 몽롱했던 엄마는 뭔가가 이상하다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빠가 방에 들어와 다시 한 번 설명하고 나서야 비로소 엄마는 사태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답답하고 무거운 3일이 흘렀다. 부모님은 서로를 위로했다. 며칠이 지난 후 엄마는 레나가 옮겨진 병동에서 모유를 먹을 수 있게끔 펌프를 사용해서 젖을 짰다. 이것은 계속 나아가겠다는 의미였다. 병원에서는 보호소에 맡길 것을 권유했지만 ‘비록 두 팔이 없어도 이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가족이다.’는 아빠의 이 한마디는 결정적이었다. 독실한 크리스천인 그녀의 부모는 하나님이 주신 아이로 확신하고 그녀를 정상아와 똑같이 신앙으로 양육했다. 물론 장애가 있는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부모에게 있어서는 큰 부담이요, 대단한 도전이다. 하지만 그녀의 부모는 처음부터 레나를 보통 아이들처럼 키우리라 다짐했다. '장애인'으로서가 아니라, 딸 레나가 우연히 장애를 안고 있다고 여겼다. 두 분은 '이 아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레나를 사랑해 주었다. 그 사랑으로 수영과 십자수, 요리와 피아노, 운전, 성가대 지휘에 이르기까지 레나는 하나 밖에 없는 오른 발로 못하는 게 없다. 3살 때부터 수영을 시작해서 스웨덴 대표로 세계 장애인 수영 선수권 대회에서 4개의 금메달을 따기도 했다. 88년 서울 장애인 올림픽 때도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어렸을 때부터 교회 성가대에서 활동했고 고등학교에서 음악을 시작하여 스톡홀름 음악대학 현대음악과를 졸업했다. 대학 졸업 후 본격적인 가스펠 가수로서의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1988년 스웨덴 국영방송에서 '목표를 향해'라는 레나의 다큐멘터리가 방영된 이후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또한 그녀는 스웨덴 국왕의 장학금으로 미국에서 가스펠을 공부하기도 했다. 1991년 일본 굴지의 방송 아사히에서 ‘목표를 향해’ 축약판이 「뉴스 스테이션」에서 방영된 것을 계기로 1992년 이후 일본에서는 매년 그녀의 콘서트가 열리고 있다. 
그녀의 수기 <발로 쓴 내 인생의 악보>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일본 등 9개국 언어로 출판되어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특히, 기독교 인구가 적은 일본에서 그녀의 책과 콘서트는 복음 전도에 지대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녀는 지금 프로 가스펠 가수로 전 세계를 다니며 자신을 인도하시는 주님의 사랑을 은혜로운 찬양과 간증으로 전하고 있다. 세계의 언론들은 그녀의 목소리를 ‘천상의 노래’라고 격찬한다. 레나는 ‘이 모든 것이 하나님 때문에 가능했다’며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과 자신과의 관계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녀는 날마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있으며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하신다는 사실이 가장 기쁘다고 한다. 그녀는 신앙의 회복을 위해 성경 학교를 수료한 후 인도로 아웃리치까지 다녀왔다. 그녀는 지금까지 한 번도 자신의 장애를 ‘장애’로 여긴 적이 없다. 오히려 그 장애가 믿음과 더불어 오늘날 자신을 있게 했다고 고백한다. 레나 마리아의 책 ‘발로 쓴 내 인생의 악보’ 서문에서 이런 이야기가 실려 있다. 

내 마음 어디선가 내 이름 부르는 당신의 조용한 목소리 들려옵니다. 
다정하게 어루만지는 바람처럼 당신은 그곳에 계시며 나는 당신 안에서, 평안을 누립니다. 
당신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사랑하노라. 너의 친구가 되리라." 
나는 알고 있습니다. 당신께서, 나를 사랑하심을, 나를 사랑하심을.
무엇이 이렇게 레나 마리아를 훌륭하게 만들었을까? 우리는 레나 마리아의 육체에 비한다면 얼마나 행복한 위치에 놓여 있는가? 멀쩡한 육체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하나님과의 심오(深奧)한 교통(交通)의 역사는 왜 없는지? 혹자는 레나 마리아는 중증장애인이기에 더욱 하나님을 찾을 수밖에 없다고 말하겠지만 그녀의 고통은 얼마나 심하였을까? 그녀 역시 정상인을 얼마나 부러워했을까?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을까? 우리도 그녀처럼 어려움과 고통 속에서 신앙으로 모든 것을 극복하여 믿음으로 굳게 설 수는 없는지? 


본문말씀은 창세기 46장으로 야곱이 가나안을 떠나 애굽에 있는 요셉에게로 떠나면서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대목이다. 
이스라엘은 온 재산과 식솔들을 이끌고 길을 떠났다. 그는 브엘세바에 이르러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께 희생제물을 드려 제사를 올렸다. 그날 밤 신비한 환상 가운데에서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야곱을 부르셨다. ‘야곱아, 야곱아!’ ‘예, 제가 여기 있습니다.’하고 야곱이 대답하였다. ‘나는 네 아버지가 섬기던 하나님이다. 너는 애굽으로 내려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를 애굽에서 큰 무리를 이루게 하리라. 엄청나게 불어나게 하리라.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리라. 또한 네 후손을 인도하여 다시 그곳에서 나오게 할 것이다. 그리고 요셉의 품에서 네 눈을 감게 할 것이다.’(창 46:1-4)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주신 말씀이 매우 인상적이다. 야곱이 제단을 쌓으니 하나님께서 함께 내려 갈 것이고, 때가 되면 함께 올라올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야곱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마음에 평화를 얻자 비로소 모든 식솔들을 이끌고 애굽으로 내려가게 되었다. 
야곱의 신앙방식에서 그리스도인의 신앙방식을 배워야한다. 야곱은 삶의 고비 고비에서 하나님께 제단 쌓는 일(♬ 327장) 잊지 않았다. 우리가 얼른 기억하는 것만 하더라도 창세기 28장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고, 브니엘에서 천사를 통해 하나님의 축복의 음성을 들었다(창 32:21-32). 
급하게 일을 하려고 서두르지 말고 한 템포 늦더라도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도록 기도하자. 기도없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을 수 없고, 하나님의 인도하심 없이 광야와 같은 길을 걸을 수 없으며,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길이 아니고는 세상을 이길 수가 없을 것이다.
♬ 369장 1. 죄짐 맡은 우리 구주 어찌 좋은 친군지 걱정 근심 무거운 짐 우리 주께 맡기세
주께 고함 없는고로 복을 얻지 못하네 사람들이 어찌하여 아뢸 줄을 모를까
2. 시험 걱정 모든 괴롬 없는 사람이 누군가 부질없이 낙심말고 기도드려 아뢰세
이런 진실하신 친구 찾아볼 수 있을까 우리 약함 아시오니 어찌 아니 아뢸까
3. 근심 걱정 무거운 짐 아니진 자 누군가 피난처는 우리 예수 주께 기도드리세
세상 친구 멸시하고 너를 조롱하여도 예수 품에 안기어서 참된 위로 받겠네

▶ 야곱은 20여 년간이나 죽은 줄로만 알았던 요셉이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어있다는 사실에 너무 흥분되어 정신없이 달려가다가 걸음을 멈추었다. 야곱은 요셉과 바로의 초청을 받고 심히 기뻐하였으나 한편 불안하기도 하였다. 요셉이 살아있다는 것이 너무 기뻐서 그 기쁜 마음에 별 생각없이 살던 헤브론을 떠나게 되었으나 감정에 들떠 하나님께 의논하지 못한 것을 깨달게 되었다. 애굽으로 내려가는 중에 브엘세바에 이르러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의 신앙적 전통을 자각(自覺)하고 그분들에게서 이어온 신앙방식대로 하나님께 희생의 제단을 쌓았다. 브엘세바는 조부 아브라함, 아버지 이삭의 신앙과 교훈이 있는 곳이고, 그들이 제단을 쌓았던 곳이다.
야곱은 한 번 더 신중하게 생각을 했을 것이다. 요셉이 부른다고 하여 애굽으로 달려가는 것이 옳은 것인가? 일찍이 할아버지 아브라함이 애굽에 내려가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고(창 12:14-20), 아버지 이삭도 애굽으로 내려가는 것이 금지된 적이 있었기에(창 26:2) 이렇게 성급히 내려가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았다. 그리고 애굽이라고 하는 강대국 안에서 살면 요셉이 살고 있는 지금은 좋겠지만 장차 정치판도가 바뀌면 어찌될는지 모른다는 불안 때문에 발걸음을 멈추지 않을 수 없었다.

기독교는 그런 의미에서 신앙의 전통을 중요시한다.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지킬 것은 지켜야 한다. 할아버지, 아버지가 자식에게 신앙방식을 물려주어야 했고 자녀들은 그에 따른 철저한 신앙생활을 해야 했다. 
■ 이러한 점에서 조상들의 신앙방식을 철저히 따른 레갑 족속은 이에 아름다운 귀감이 된다.
렘 35:1-11 / [레갑 족속의 모범]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 왕이 유다를 다스리던 때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2) “너는 레갑 집안의 어른들을 찾아가서 그들을 초대하여 성전의 어느 방에 데려다 놓아라. 그러고 나서 너는 그들에게 포도주를 대접하며 자유롭게 마시도록 권유하여라.” 3) 그래서 예레미야가 그 당시 레갑 족속의 지도자였던 야아사냐를 찾아갔다. 그는 하바시냐의 손자요 예레미야의 아들이었다. 그는 예언자 예레미야의 초대를 받아들여 자기의 모든 형제와 아들들은 물론 레갑 집안의 모든 후손을 데리고 4) 성전으로 왔다. 예레미야는 그들을 예언자 하난의 제자들이 사용하는 방으로 안내하였다. 하난은 익다랴의 아들이었다. 그 방은 고관들의 방 곁에 있었고, 살룸의 아들로서 성전의 문을 지키던 마아세야의 방 위에 있었다. 5) 그 방에서 예레미야는 레갑 족속의 사람들에게 포도주가 가득 찬 술병을 내놓고 잔을 건네주며 마시기를 권하였다. 6) 그러나 레갑의 후손들은 모두 이렇게 대답하였다. “우리는 포도주를 전혀 마시지 않습니다. 우리의 조상 레갑의 아들 요나답께서 우리에게 이런 명령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절대로 포도주를 마시지 마라. 너희는 물론 너희 후손들도 영영 포도주를 마시지 마라. 7) 너희는 집을 짓고 어느 곳에 정착하지도 말고 농토를 차지하여 곡식의 씨를 뿌리지도 말고 포도원을 만들어 포도나무를 심거나 포도원을 소유하지도 마라. 너희는 언제나 사막의 유목민으로서 천막을 치고 살아라. 그러면 너희가 이 땅에서 오래 살 수 있을 것이다.’ 8) 그래서 우리는 우리 조상의 이 교훈을 언제나 철저하게 지켜 왔습니다. 우리는 물론 우리의 아내와 아들과 딸들도 포도주를 마시지 않습니다. 9-10) 우리는 지금까지 집을 지은 일이 한 번도 없으며 그저 천막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포도원도 없고 농토도 없고 심지어 곡식의 씨앗도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조상 요나답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모든 것들을 정확하게 엄수하고 있습니다. 11) 그런데 지금 바벨론 군대가 이 땅으로 쳐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느부갓네살의 바벨론 군대와 수리아 군대를 피하여 예루살렘성으로 대피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런 이유로 저희가 지금 여기 예루살렘에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제일주의, 신앙제일주의, 오직 복음, 오직 은혜, 오직 말씀의 전통이 살아 있어야 한다. 
야곱이 하나님 제일주의로 나아가 희생의 제사를 드렸더니 하나님께서 이상 중에 말씀하셨다. 
‘나는 네 아버지가 섬기던 하나님이다. 너는 애굽으로 내려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를 애굽에서 큰 무리를 이루게 하리라. 엄청나게 불어나게 하리라.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리라. 또한 네 후손을 인도하여 다시 그곳에서 나오게 할 것이다. 그리고 요셉의 품에서 네 눈을 감게 할 것이다.’
애굽이 이방인의 나라이고 우상 숭배의 나라이므로 전에는 금했으나, 이제는 하나님께서 직접 동행하리니 두려워 말고 내려가라는 허락이다.
사실 애굽은 우상숭배의 나라이고, 여러 가지 문물이 달라서 족장들의 전통과 신앙유산이 파괴될는지도 모르는 곳이다. 야곱이 두려워하는 점이 바로 이것이다. 
세상을 살 때 때로는 올라가기도 하고 내려가기도 해야 한다. 예수님은 세 제자와 함께 변화산에 올라갔으나, 황홀한 영적 변화의 체험 후에 베드로에게 산 아래로 내려가자고 하셨다. 그러자 베드로는 ‘여기 산 위에가 좋습니다’라고 했다. 그러나 산 아래로 내려가자고 하셨다. 크리스천이라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듯이, 타락한 세상을 도외시하기보다는 저들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시대변화를 두려워하거나 세상에서의 할 일을 외면한 채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편히 살려고만 하지 말고, 그렇다고 내 경험에 의존하여 세상을 살아가려고 하지 말고 믿음의 선조들을 닮아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자. 
♬ 263장 1. 이 세상 험하고 나 비록 약하나 늘 기도 힘쓰면 큰 권능 얻겠네
3. 내 맘이 약하여 늘 넘어지오니 주 예수 힘주사 굳세게 하소서
<후렴> 주의 은혜로 대속하여서 피와 같이 붉은 죄 눈같이 희겠네 아멘 
세상의 변화를 무시할 수도 없다. 그런데 이런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과 의논하면, ‘내가 함께 내려갈 터이니 두려워 말고 가라’고 하시면 그대로 하면 된다. 광야와 같은 이 세상일지라도 불기둥과 구름기둥이 인도하는 그대로 따라 가면 된다. 어떤 측면에서 본다면 이것처럼 쉬운 것이 어디 있는가?
다윗이 늘 즐겁게 부르던 찬송이 오늘도 우리의 귀에 들려온다.
시 23:1-6 / [여호와는 나의 목자; 다윗의 노래]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그 무엇이 부족하리오. 2) 편히 쉬라 푸른 풀밭으로 인도하시고 고이 쉬라 시원한 시냇가로 데려가시네. 3) 내게 생기 불어넣으시고 똑바른 길로만 이끌어 주시니 주님이 아니고서야 주님의 이름 아니고서야 어찌 그러리. 4) 나 죽음 그늘 드리운 깊은 골짜기 지난다 해도 아무런 두려움없이 가리라. 주께서 내 곁에 함께 계시니 목자 손에 들려 있는 지팡이와 막대기처럼 인도하여 주시니 하고 많은 시름 사라져 버리고 이 마음 이렇듯 든든하여라. 5) 원수들 두 눈 뜨고 쳐다보는데 보란듯 이것 앞에 잔칫상 차려 주시고 귀한 손님 대접하듯 기름 발라주시며 잔이 흘러넘치라 하고 부어 주시네. 6) 아, 그 누가 이렇듯 행복하리오. 이처럼 포근하리오. 주님의 손길 살아생전 끊이지 않으리니 이 목숨 살아 숨 쉴 동안에 주님의 전에 오래도록 살으리이다.

만일 하나님과 함께 가지 아니하고 야곱이 애굽으로 내려갔다면 그는 실패했을지도 모른다. 하나님과 동행하자. 예수님은 하늘의 보좌를 버리고 세상에 내려오셨다. 그리고 매사에 하나님과 의론하셨다. 병든 사람, 연약한 사람을 돌아보셨고, 서민들이 먹고 마시는 자리에 함께 하셨다. 가나의 혼인 잔치 집에도 오셨다. 끝내는 죄인의 자리에 내려오셨는데 십자가를 지시고, 무덤까지 가셨다.
모든 일에 하나님께 올라가는 것은 좋아하지만 타락한 세상을 향해 십자가를 지고 내려가는 것은 두렵고 떨린다. 야곱은 요셉에게로 가는 것이 육신적으로는 편한 길이고 좋은 길이지만 영적으로 내려가는 길이 아닌가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이 어떠한 지를 찾았던 것이요 이것이 야곱의 철저한 신앙방식이었다. 이러한 신앙을 이어받은 모세의 영적자세를 히브리서에서 보여주고 있다.
히 11:24-26 / 모세가 어른이 되었을 때 애굽 왕의 손자로 불리는 것을 거절한 것도 그에게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잠시 동안의 쾌락을 위해 죄에 빠지기보다는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을 나누는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26) 애굽의 모든 보화를 소유하는 것보다는 장차 오시기로 약속된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받는 편이 훨씬 더 낫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실 큰 상을 더 바란 것입니다.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과 함께 하는 길이면 문제가 없다. 그곳이 천국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세상의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자. 영구한 도성이 없는 이 땅에서 진정 의지할 분이 누구이겠는가? 
♬ 438장 / 1.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 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후렴>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 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2. 주의 얼굴 뵙기 전에 멀리 뵈던 하늘나라 내 맘 속에 이뤄지니 날로날로 가깝도다
3.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 중국에서 80여 년간의 생애를 바쳤던 전설적인 선교사인 허드슨 테일러에게 젊은 선교사들이 조언을 듣고자 방문했다. 그가 먼저 젊은이들에게 물었다. "당신은 왜 선교사의 길을 가려고 합니까?" 젊은이들은 자신 있게 대답했다. "저는 이 황무지 같은 땅에 교회들이 서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저는 중국인들이 복음을 들고 미개한 삶에서 벗어나기를 바랍니다." 그러자 테일러는 웃으면서 말했다. "나는 아닙니다. 나는 중국이 사랑스러워서도 아니고, 이곳 생활이 즐거워서도 아닙니다. 모래 바람이 일고 미개한 사람들이 많은 이곳 생활이 즐거워서도 아닙니다. 모래 바람이 일고 미개한 사람들이 많은 이곳 생활이 무엇이 좋습니까? 나는 이곳에 있는 것을 즐거워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 일을 위하여 목숨을 버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가 지금도 내 안에서 나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 십자가의 사랑에 붙잡히면 조금도 사랑스럽지 않은 것을 사랑하게 됩니다. 조금도 즐겁지 않은 그것을 즐거워하게 됩니다. 도저히 내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그 길을 강권하시는 사랑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걸어갈 수 있습니다." 
이 시대에 믿음으로 사는 이들은 허드슨 테일러와 같이 고난받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세상의 변화와 함께 세상의 풍요와 이방풍속에 빠지지 않도록 삼가 유의해야 한다. 세상의 죄악과 타락한 풍속들이 만연하는 것이 어찌 걱정이 되지 않겠는가? 어디든지 주님과 동행하면 승리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요셉이 형들의 손에 팔려서 애굽에 내려가 갖가지 경건의 훈련을 극복하면서 나갔듯이 우리도 그렇게 준비하도록 하자. 
문제는 우리가 믿고 순종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이런 찬송을 부르며 기도를 하자.
♬ 490장 / 1. 주여 지난 밤 내 꿈에 뵈었으니 그 꿈 이루어 주옵소서 밤과 아침에 계시로 보여주사 항상 은혜를 주옵소서 [후렴] 나의 놀라운 꿈 정녕 나 믿기는 장차 큰 은혜 받을 표니 나의 놀라운 꿈 정녕 이루어져 주님 얼굴을 뵈오리라 
2. 마음 괴롭고 아파서 낙심될 때 내게 소망을 주셨으며 내가 영광의 주님을 바라보니 앞길 환하게 보이도다 
3. 세상 풍조는 나날이 갈리어도 나는 내 믿음 지키리니 인생 살다가 죽음이 꿈같으나 오직 내 꿈은 참되리라 

▶ 그렇다면 믿음은 무엇일까?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확신을 갖는 것이 아닌가? 또한 아직 눈앞에 보이지 않는 미래의 일일지라도 우리가 기대하는 것이 반드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 것이다(히 11:1). 
믿음은 형식이나 모양이 아니라 실제적인 것이다. 마가복음 5장에 12년 동안 혈루병을 앓아 온 여인은 많은 의원을 찾아다니며 백방으로 치료를 받았지만 고쳐지지 않고 악화됐다. 절망에 빠져 있는데 예수님의 소문을 들었고, 거리로 나가 수많은 인파들을 헤치고 예수님 뒤로 와서 살며시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더니 순식간에 혈루병이 고쳐졌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 곁에서 말씀도 듣고, 북적대며 예수님을 만났지만 그들에게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오직 혈루병을 앓은 여인만 고침을 받았다. 왜 그랬을까? 다른 사람들은 그냥 예수님을 만졌지만 이 여인은 믿음으로 예수님의 옷자락을 잡았기 때문이다. 그러자 예수님의 몸에 있던 능력이 믿음의 손을 타고 여인에게 흘러들어가 병 고침을 받은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나름대로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하고 봉사하고 신앙생활을 한다. 하지만 모두에게 예수님의 능력이 흘러들어가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형식적으로 교회는 나오지만 믿음으로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특히 신앙생활을 오래하고 직분이 높은 분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이다. 온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사람하고 이웃을 사랑하려고 힘써야 한다. 그래야 그 신앙과 봉사가 형식만이 아닌 참 믿음이 될 수 있다. 
에서가 그러했던 것처럼 하나님께 무관심하지 않도록 조심하자. 에서는 팥죽 한 그릇에 맏아들의 권리를 팔아먹었다. 나중에 가서 에서는 후회의 눈물을 흘리면서 그 권리를 되찾으려고 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그러므로 이 일을 기억하고 언제나 조심하자(히 12:17-18). 

야곱처럼 임재하심을 받도록 하나님께 기도하되 서원기도도 하면서 기다리자.
창 28:10-17 / [야곱이 하늘이 열리는 것을 보다] 야곱은 브엘세바를 떠나 하란을 향하여 길을 떠났다. 11) 해질 무렵 야곱은 어떤 곳에 이르러 밤을 지낼 채비를 하고 그곳에 있던 돌 하나를 주워다가 베개 삼아 잠자리에 들었다. 12) 그가 잠을 자면서 꿈을 꾸는데 땅바닥에서 하늘까지 맞닿는 큰 사다리가 보였다. 그런데 하나님의 심부름꾼들이 그 사다리를 타고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이 아닌가? 13) 또 그 위에는 여호와께서 서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나는 여호와이다. 네 할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네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이다. 네가 지금 누워 있는 이 땅을 내가 네게 그리고 네 후손에게 주리라. 14) 네 후손이 엄청나게 불어나 땅의 먼지만큼 많아지리라. 동서남북 어디를 가든지 네 후손들이 그곳에서 가득하게 살리라. 또한 너와 네 후손으로 말미암아 뭇 나라들이 복을 받으리라. 15) 나는 늘 너와 함께 있을 것이다. 네가 어디를 가든지 지켜 주리라. 분명히 말한다만 그렇게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하더라도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내가 네게 약속한 것을 다 이루기 전까지는 내가 절대로 네 곁을 떠나지 않으리라.' 16) 야곱은 잠에서 깨어나 `여호와께서 바로 이곳에 계시는구나. 그분이 바로 여기에 계신데도 내가 그걸 몰랐구나' 하고 중얼거리면서 17) 무서워하였다. 그리고 이렇게 외쳤다 `바로 여기가 하나님의 집 아닌가? 이곳이 바로 하늘이 열리는 문이로구나.'
창 28:18-22 / 야곱은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베개로 베고 잤던 그 돌로 비석을 세우고는 그 위에다 기름을 붓고 19) 그곳을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으로 벧엘이라 이름지었다. 본디 그 성읍의 이름은 루스였다. 20) 그리고 나서 야곱은 여호와께 이렇게 맹세하였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고 내가 가는 길마다 나를 지켜 주시고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내게 주신다면 21) 또한 무사히 아버지가 계시는 고향으로 돌아가게 하신다면 여호와께서는 내가 섬기는 하나님이 되실 것입니다. 22) 또한 이곳에 이렇게 세운 비석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하나님의 전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주께서 내게 주신 것 중 10분의 1을 주께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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