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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화석 목사의 제18차 AWMJ 155번째나라 마케도니아 사역보고 2019-06-21
작성자 홍보실 조회수: 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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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마케도냐 환상을 아시죠? 그 땅을 왔기에 보고 글이 더 길어졌지만 천천히 읽으시면 큰 은혜와 도전이 될 것입니다. 불가리아에서의 감동적인 사역을 마무리하고 육로로 국경을 넘어 마케도니아의 수도인 스코피예에 5시간 만에 도착하니 이 지역에서 싱글로 선교하시는 정한나 선교사님이 영접했습니다. 체크인하고 사역 스케줄을 점검하고 카스와 카톡 사역 후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이 나라의 공식 국명은 북 마케도니아이며, 인구 200만명, 면적은 남한의 사분지일 정도, 수도인 스코피예 인구는 60만정도, 1991년 11월 20일 유고 연방에서 독립, 언어는 마케도니아어, 종족은 마케도니아인 64.2%, 알바니아인 25,2% 터키인 3,9%, 루마니아인 2,7% 세르비아인 1,8%, 종교는 동방정교회 65%, 이슬람 33%, 로마카토릭 0.2%, 복음주의 기독교인 0.0025%, 국민 1인당 GDP $ 6,200입니다.

그리고 이 나라는 알렉산더의 아버지인 필립 2세가 통치했던 작은 나라, 알렉산더 대왕을 배출한 나라, 마더 테레사를 배출한 나라, 데살로니가 선교사 끼릴 형제가 슬라브족 문자인 키릴어를 만든 곳, 유대인 9000명이 갑자기 처형되어 세계 4대 홀로코스트가 있는 곳입니다.

이 곳 마게도니아는 알렉산더 대왕 때 그리스 왕국의 일부였습니다. 6~7세기경 남슬라브족이 이주해 와서 마케도니아인과 혼혈이 되었습니다. 불가리아의 지배를 받다가 11세기 비잔틴의 지배를 받았고, 1355년부터 오스만터키 지배를 500년간 받았습니다. 2차 대전 후인 1943년에는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이 되었습니다. 1991년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이 무너지고 11월 20일 독립하였습니다. 2019년 1월 그리스와 협의 유엔 중재로 국명을 북 마케도니아로 정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마게도냐로 불려지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기독교 역사는 먼저 사도행전16장 마케도냐의 환상이 이곳에 복음이 들어오게 하였습니다. 그 후 기독교가 서방교회와 동방교회로 나누어질 때 마케도냐는 동방정교회가 되었습니다. 역사의 격변기로 많은 전쟁이 있었고 오스만터키 제국의 침략으로 이슬람이 들어왔습니다. 2차대전 후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이 되면서 종교가 제재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이 무너지면서 종교의 자유가 주어졌습니다. 그 때 대부분의 마케도니아 인들은 동방정교인이 되었고 알바니아인들은 이슬람을 그대로 유지하였습니다. 그리고 작은 수의 로마카톨릭이 있습니다. 복음주의 기독교는 19세기초 감리교 선교사가 그 뒤를 이어 침례교 선교사가 들어왔지만 성장하지 못했습니다.

1986~7년경 세르비아 선교사 부부인 Diveitrje Popadic & Coeta가 스코피예에 와서 가정교회를 출발시키면서 오순절교회라 하였는데, 후에 마케도냐 복음주의교회로 개명을 하였습니다. 현재 마게도냐 전국에 50여개의 교회가 있습니다. 마케도냐 복음주의 교회가 가장 큰 교파로서 40개의 교회가 있고, 나머지 몇 개 교파가 10개의 교회를 가지고 있습니다. 목사는 20명 정도 전임사역을 하고 선교사는 25명이 있는데 미국, 루마니아, 알바니아, 한국 순입니다. 한국은 2영의 싱글 여자 선교사입니다. 성도들은 교회마다 4~50명 정도입니다. 그래서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은 0.0025% 정도입니다.

이 곳에서의 사역은 첫째, 선교자료 수집을 위한 강의는 국회의원과 기독교연합회 회장이 맡아서 진행하였습니다. 둘째, 교계 지도자 세미나와 목회자 세미나가 수도 스코피예 최초로 세워진 교회당이며, 최대의 교단본부가 있는 교회에서 25명 정도가 모였습니다. 나는 교회 성장을 한국교회에서 배우지 말고 성경에서 배우라고 하였습니다. 교회 성장은 영적 기초체력이 튼튼해야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 방법은 사도행전 1장의 말씀과 기도운동 2장의 성령세례와 전도운동을 해야한다고 강의했습니다. 성경, 기도, 성령충만, 전도 이것을 행동으로 실천해야 하며, 목사는 누구를 가르치기 전에 자신이 행동해서 변화되어야 한다고 강력하게 전했습니다. 강의를 마치고 난 후 더 배우고 싶다고 해서 내일 출발 직전 숙소로 오면 한시간 반을 강의하고 알바니아로 떠나기로 했습니다.

셋째, 선교사 세미나는 선교사님과 대담을 통해서 동역자 선교를 할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미국인과 결혼해서 이 곳에서 선교하시는 선교사님께서 큰 감동을 받으셨다면서 지갑을 털어 300$을 선교비로 주었습니다. 또 벼룩이 간을 먹습니다. 넷째, 국회의원과의 사역입니다. 그는 우리를 데리고 네시간 가까이 마케도냐 시내, 의사당, 박물관, 홀로코스트, 광장, 개선문, 마더테레사 탄생지를 다니면서 역사를 설명하였습니다. 그는 가장유력한 정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몇 표 차이로 2등을 했다고 합니다.

그 분과 교제하면서 “나는 간 나라는 다시 가지못한다. 가야 할 나라가 많고 나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신이 대권에 도전하여 대통령이 되서 나를 초청하면 다시 오겠다”고 하니 그렇게 하겠다고 악수로 약속을 해서 기도해 주었습니다. 그는 떠나는 날 아침 우리들을 자기집으로 초대 식사대접을 하였습니다. 그의 아내는 미국인으로 유럽 국회 조찬기도회를 이끄는 목사님 딸이었습니다. 그는 내가 전세계를 다니며 지도자들을 깨우는 일을 한다는 소개를 듣고 모시게 되어 영광이라고 기뻐하였습니다. 지금까지 파라과이, 페루, 마다카스카르, 스리랑카, 마케도니아 다섯나라 정치 지도자들에게 대권 도전을 권면하고 축복 기도를 해주었습니다.

떠나는 날 아침 9시, 더 배우겠다고 숙소로 찾아온 지도자 한 분을 그리고 한국선교사님을 상대로 내 방에서 한 시간반 동안 “예수님처럼 삽시다”를 강의해 주었습니다. 오래 전 남태평양 프랑스령 뉴 칼레도니아에서 세미나 후 숙소로 찾아와서 더 강의를 듣고 싶다던 교계 지도자들이 생각납니다. 그들은 감격해 했습니다. 짧은 이박삼일 동안에 참많은 사역을 하고 많은 도전과 충격을 주고 알바니아로 육로를 통해 떠납니다. 기도해주세요. 세계일주 선교사 신화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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