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I 자유게시판

자유게시판

제목 (복음 7) 은혜로 받는 구원 2017-09-05
작성자 강금성 조회수: 189
첨부파일     
복음(7) 이신칭의는 거짓된 교리라는 첫째 증거 : 은혜로 받는 구원


   복음은 “예수는 우리의 범죄함 때문에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신 것”입니다(롬 4:25). 이 복음으로 하나님은 죄를 범하는 우리 옛 사람을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하여 죄의 종노릇에서 벗어나게 하고, 허물과 죄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려 선한 일을 하는 사람으로 새로 지으십니다. 그러므로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는 죄의 종노릇에서 벗어나 의의 종노릇하는 실제적인 의입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납니다(롬 1:17). 그런데 교회가 복음을 “예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심으로, 우리가 받을 형벌을 대신 받으셨다.”는 것으로 변질시켰습니다. 복음의 왜곡은 필연적으로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가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도 왜곡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16세기 이후의 종교개혁자들은 예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심으로 죄값을 치르셨으니 그를 믿는 자마다 의가 덧입혀지고(M. 루터) 혹은 의가 전가되어(J. 칼뱅)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이신칭의’(以信稱義)의 교리를 탄생시켰습니다. 이신칭의의 교리는 예수 믿는 사람은 덧입혀지는 의로 말미암아 죄인이지만 의인으로 인정받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종교개혁자들이 이신칭의 교리의 성경적 근거라고 주장하는 구절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신칭의의 교리는 거짓이라는 것이 드러납니다. 종교개혁자들이 이신칭의의 교리의 성경적 근거라고 주장하는 것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은혜로 구원 받는다.
   2. 예수께서 우리를 대속(속량)하셨다.
   3. 예수께서 우리 죄를 담당하셨다.
   4. 예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셨다.
   5. 예수께서 속죄제물이 되셨다.
   6.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다.

   위 여섯 가지 말씀은 성경이 말하고 있는 것으로 모두 진리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이 말씀들이 어떤 의미로 사용되는가를 보면 이 말씀들은 이신칭의의 교리를 지지하는 근거가 아니고, 오히려 이신칭의의 교리가 거짓 교리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 글에서는 “은혜로 구원 받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사도들은 의롭다 함을 받고 구원을 받는 것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다고 선언했습니다. 

(행 15:11)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롬 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엡 2:8-9)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사도행전 15장 11절은 제1차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사도 베드로가 한 말입니다. 그는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은 ‘주 예수의 은혜로’ 받는다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도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함을 얻은 자 되었다고 선언하고(롬 3:24), 너희가 ‘그 은혜에 의하여’ 구원을 받았고,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엡 2:8-9). 이러한 용어들을 근거로 종교개혁자들은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이 ‘덧입혀지는 의’나 ‘전가되는 의’로 말미암는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그러나 종교개혁자들의 해석은 성경이 말하는 것과 전혀 다릅니다. 

1. 베드로가 사용한 ‘은혜’의 의미

   사도행전 15장은 수리아 안디옥 교회에서 구원론에 관한 서로 다른 이해로 인해 다툼이 일어난 사건에 대해 당시 모 교회라 할 수 있는 예루살렘 교회에 대표단을 파견하여 질의를 하고, 이에 예루살렘에서 회의가 소집돼 그 문제를 토의한 후 내린 결론을 말하고 있습니다. 후세 사람들은 이 회의를 ‘제1차 예루살렘 공의회’라 부르는데, 주후 48년에 이 회의가 열렸다고 합니다. 

   이 회의의 안건은 ‘사람이 어떻게 해야 구원을 받는가?’였습니다. 박해를 피해 수리아 안디옥으로 간 사람들이 전도하여 제자들이 많아졌을 때 유대로부터 온 어떤 사람들이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러자 바울과 바나바가 구원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받는 것이지 할례가 무슨 필요가 있는가? 라고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이에 둘 사이에 큰 다툼이 일어났고, 그들은 대표단을 파견해 “어떻게 해야 구원을 받는가?”에 대해 질의를 했습니다. 이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 가운데는 사도가 전부 포함되었습니다. ‘많은 변론’이 있은 후  베드로가 다음과 같이 발언했습니다.

(7)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되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8)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언하시고 
(9)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이 하사 그들이나 우리나 차별하지 아니하셨느니라 
(10)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11)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베드로가 발언한 핵심 내용은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다”는 것이고, 할례를 행하거나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고 가르치는 것은 합당치 않다는 것입니다. 결국 사도들을 포함한 공의회는 “오직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다.”는 것을 만장일치로 가결합니다. 여기서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이 말한 ‘은혜’의 개념이 드러납니다. 

   베드로는 복음을 전하면서 이방인들이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영접하면 성령이 임하고, 각 사람의 마음이 깨끗케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로 인해 예수님을 영접한 이방인들은  우상을 버리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고, 음란과 더럽고 추한 말들을 그쳤으며, 선한 일과 말에 힘썼습니다. 이에 “(11)우리가 저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고 한 것입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모든 사도들은 은혜란 용어를 성령으로 인해 실제로 마음이 깨끗해진 것을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했습니다. 종교개혁자들처럼 ‘의가 덧입혀져 의롭다함을 얻는 것’의 의미로 은혜란 용어를 사용한 것이 아닙니다. 

2. 사도 바울이 말한 ‘은혜’의 의미

   사도 바울은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얻는 것이며(롬 3:22, 24), 율법의 행위로 얻는 ‘자기 의’와 대조되는 것이라 했습니다(10:2-3). 이에 따라 종교개혁자들은 하나님의 의를 ‘전가되는 의’ 혹은 ‘덧입는 의’라고 주장했고, 그들의 주장이 개신교의 전통으로 굳어졌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사용한 은혜의 개념을 바르게 알면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는 덧입혀지는 의가 아니라 실제적인 의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구원과 관련해 ‘은혜’란 용어를 사용한 대표적인 것은 에베소서 2장 1-10절입니다. 

(엡 2:1-10)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4)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10)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사도 바울은 이 단락에서 ‘은혜’란 용어를 세 번 사용했습니다(5, 7, 8절). 그가 말하고자 한 것은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은 은혜로 받는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구원 받기 전과 구원 받은 후의 우리를 비교함으로써 구원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말합니다. 구원 받기 전의 우리는 허물과 죄로 죽어 있었고,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 권세 잡은 자를 따르며 육체의 정욕을 따라 살았습니다(2-3절). 그렇게 허물과 죄로 죽은 우리를 하나님이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습니다. 이것이 구원이고, 구원은 은혜로 받습니다(5절). 10절은 구원 받은 사람의 형편을 말합니다. 구원을 받은 사람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았기 때문에 그 가운데서 행하게 됩니다(10절).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선물이라는 것입니다(8절). 

   따라서 은혜는 허물과 죄로 죽어 있어서 이 세상 풍조와 공중 권세 잡은 자와 육체의 정욕을 따라 살던 사람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고 선한 일을 하는 사람으로 새로 지으심을 받아 그 가운데서 행하게 된 것을 의미합니다. 종교개혁자들이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것을 이유로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를 덧입혀지는 의나 전가되는 의로 해석하는 것은 단순한 실수를 지나서 진리를 왜곡한 큰 죄악을 범한 것입니다. 그로 인해 교회가 입은 피해를 생각한다면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얼굴을 들 수 없을 것입니다. 

맺는 말

1.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습니다(sola fide).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받는 선물입니다(sola gratia). 그러나 덧입혀지는 의나 전가되는 의로 의롭다 함을 얻어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성령의 권능으로 우리의 마음이 깨끗해져서 사람이 의로워지고,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서 선한 일을 하는 사람으로 새로 지으시는 것으로 구원받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원을 받아 의를 행할지라도 그 모든 의는 성령의 깨끗케 하심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통해 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요 값없이 받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로 말미암는 모든 의는 하나님에게서 난 것이요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므로 아무도 자랑할 수 없습니다(엡 2:9).

2. 진리가 아닌 다른 것을 말하는 것이 거짓말입니다. 예수님은 성전에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향해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다.”고 함으로써 종교지도자들을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예수님이 종교지도자들을 마귀의 자녀라고 한 것은 그들이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였기 때문입니다(요 8:44). ‘은혜’란 용어만 살펴보았지만, 이신칭의는 진리가 아니라 거짓입니다. 이 거짓을 분별하여 배격하지 않고 내 것으로 말한다면 우리 역시 마귀의 자녀라는 책망을 피할 수 없습니다. 보헤미야(체코)의 종교개혁자 얀 후스(Jan Hus)가 1417년 콘스탄츠 공의회에서 이단으로 정죄를 받아 화형을 당하기 직전 남긴 말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여, 진리를 찾으라! 진리를 들으라! 진리를 배우라! 진리를 사랑하라! 진리를 말하라! 진리를 지키라! 죽기까지 진리를 수호하라! 그것은 진리가 너를 악마로부터, 영원한 죽음으로부터 자유롭게 하기 때문이다.” 


신부동교회 강금성 목사
이전글 그렇게 좋다면 차라리 배설물로 여기고
다음글 찾아가는 교회 음향&영상 세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