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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 10) 속죄제물이 되신 예수님 2017-10-20
작성자 강금성 조회수: 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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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10) 이신칭의는 거짓된 교리라는 넷째 증거 : 속죄제물이 되신 예수님


  사도 바울은 로마서 3장에서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는 아무도 없다고 선언한 후,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예수를 속죄제물로 내주셨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롬 3:25) 하나님께서는 이 예수를 속죄제물로 내주셨습니다. 그것은 그의 피를 믿을 때에 유효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것은, 사람들이 이제까지 지은 죄를 너그럽게 보아주심으로써 자기의 의를 나타내시려는 것이었습니다.<표준새번역> 

  종교개혁자들은 예수께서 속죄제물이 되셨다는 것을 근거로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는 덧입는 의 혹은 전가되는 의라 주장했고, 이 덧입는 의로 말미암아 “나는 죄인이지만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이신칭의의 교리를 세웠습니다. 결론을 미리 말씀드린다면 종교개혁자들이 예수께서 속죄제물이 되셨다는 것을 근거로 이신칭의의 교리를 주장한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속죄제물이 되심으로 이루신 것은 우리에게 의를 덧입혀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겉 사람과 속 사람을 깨끗케 하여 실제로 의롭게 하기 때문입니다. 

1. 속죄제물인가? 화목제물인가? 

  표준새번역이 ‘속죄제물’로 번역한 로마서 3:25절의 헬라어 ‘힐라스테리온’을 개역개정역은 ‘화목제물’로 번역했습니다. 

<개역개정역>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신약성경에서 ‘힐라스테리온’이란 단어가 사용된 곳은 로마서 3장 25절과 히브리서 9장 5절 두 곳뿐입니다. 히브리서 9장 5절에서 힐라스테리온은 지성소의 법궤를 덮고 있는 뚜껑, 즉 속죄소를 가리킵니다. “(히 9:5) 그 위에 속죄소(힐라스테리온)를 덮는 영광의 그룹들이 있으니 이것들에 관하여는 이제 낱낱이 말할 수 없노라.” 힐라스테리온이란 단어의 ‘온’은 장소나 도구를 의미하고, 힐라스테리온은 속죄소(히 9:5)나 속죄소에 뿌려진 피(롬 3:25)를 가리킵니다. 속죄소에 피를 뿌리는 제사는 속죄일에 드리는 속죄제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힐라스테리온을 표준새번역을 따라 속죄제물로 번역하는 것이 옳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보겠습니다.  

  레위기의 제사 규례를 보면, 제사마다 피를 처리하는 장소와 방식을 엄격하게 구분합니다. 곡식을 예물로 드리는 소제를 제외하고, 각각의 제사에서 피를 처리하는 규례는 다음과 같습니다. 

①번제는 예물이 소, 양, 염소일 때는 그 피를 성전 뜰에 있는 번제단 사방에 뿌리고, 비둘기일 때는 그 피를 번제단 곁에 흘립니다(1장). 
②화목제는 소, 양, 염소를 예물로 드리고, 피는 번제단 사방에 뿌립니다(3장).
③속죄제는 제사를 드리는 사람과 제물에 따라 피를 처리하는 장소와 방식이 다릅니다.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이나 이스라엘 온 회중이 계명을 범하였을 때는 수송아지를 제물로 삼고, 그 피는 성소의 휘장에 일곱 번 뿌리고, 향단 뿔에 바르며, 나머지는 번제단 밑에 쏟도록 했습니다. 족장이나 평민이 계명을 범했을 때는 각각 숫염소와 암염소를 제물로 드리고, 그 피는 번제단 뿔에 바르고 나머지는 번제단 밑에 쏟도록 했습니다. 어린 양을 속죄제물로 드릴 수도 있었는데, 그 때도 피는 번제단 뿔에 바르고 나머지는 번제단 밑에 쏟아야 합니다(4장). 힘이 미치지 못하여 비둘기를 제물로 드리는 경우에는 피를 번제단 밑에 흘리도록 했습니다(5:9). 
④속건제의 피는 번제단 사방에 뿌립니다(7:1).
⑤제사장의 위임식 때 속죄제는 수송아지를 예물로 삼아 피는 번제단의 네 귀퉁이에 발라 제단을 깨끗하게 하고 나머지는 번제단 밑에 쏟아 거룩하게 합니다. 번제는 숫양으로 드리고, 피는 번제단 사방에 뿌립니다. 위임식 숫양의 피는 위임을 받는 제사장의 오른쪽 귓부리와 오른쪽 엄지손가락과 오른쪽 엄지발가락에 바르고 나머지 피는 번제단 사방에 뿌립니다. 또 제사장들의 옷을 거룩하게 하기 위해 제사장들의 옷에 뿌리기도 했습니다(8장).
⑥속죄일에는 제사장 자신을 위한 속죄제는 수송아지를 잡고 그 피는 지성소의 속죄소 동쪽과 속죄소 앞에 일곱 번 뿌립니다. 또 백성을 위한 속죄제물은 염소를 잡고 그 피는 속죄소 위와 속죄소 앞에 뿌립니다(16:11-16).   

  위에서 보듯 지성소 안의 속죄소(힐라스테리온)에 피를 뿌리는 제사는 매년 7월 10일의 속죄일에 온 백성을 위한 속죄제뿐입니다. 그러므로 로마서 3장 25절의 ‘힐라스테리온’은 속죄제물로 번역하는 것이 옳습니다. 

2. 속죄제는 어떤 제사인가?

  (복음 2) “베일에 가린 십자가”에서 살펴본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대하여 교부시대로부터 지금까지 교회를 지배하고 있는 가르침은 ‘보상설’과 ‘만족설’입니다. 보상설과 만족설은 우리가 범한 죄에 대한 형벌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신 받으신 것으로 이해한 것입니다. 종교개혁자들은 이 보상설과 만족설을 기초로 덧입는 의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이신칭의’의 교리를 만들어냈습니다. 그러나 속죄제가 어떤 제사인가를 알면 이신칭의는 거짓된 교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속죄제는 정결케 하기 위한 제사

  ‘속죄제’의 우리말 뜻은 ‘죄를 면제받기 위해 드리는 제사’입니다. 그리고 교부시대로부터 지금까지 보상설과 만족설을 지지해 온 교회도 속죄제를 죄를 면제받기 위해 드리는 제사로 이해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레위기가 속죄제를 드리라고 정한 규례를 보면, 속죄제가 죄를 면제받기 위해 드리는 제사라고 하기에는 훨씬 다양한 경우에 드린다는 것입니다. 레위기에는 ‘속죄제’란 단어가 50회 언급되어 있는데 다음 열 가지 경우에 속죄제를 드리도록 했습니다. 

   ①계명을 범하여 허물이 있을 때(4장)
   ②저주하는 소리를 들고도 알리지 않았을 때(5:1)
   ③부정한 동물의 사체를 만졌거나 부정한 사람과 닿았을 때(5:2-3) 
   ④함부로 맹세하였을 때(5:4-6)
   ⑤제사장의 위임식을 행할 때(8-9장)
   ⑥자녀를 출산하여 부정해진 여인의 정결을 위해(12장)
   ⑦나병 환자가 병이 나은 후 정결의식을 행할 때(14장)
   ⑧유출병 환자가 병이 나은 후 정결의식을 행할 때(15장)
   ⑨속죄일에 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갈 때(16장)
   ⑩칠칠절에(23:19)

  레위기에서 속죄제를 드리도록 한 위 열 가지 경우를 보면, 속죄제를 죄를 면제받기 위한 제사로 이해하는 것이 매우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사람이 죄를 범하여 허물이 있거나, 부정한 것에 의해 부정해졌을 때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나아갈 수 없게 됩니다. 이때 허물과 부정을 씻어 정결케 하기 위한 제사가 속죄제이며, 정결케 됨으로써 하나님께 나아가게 하는 제사입니다. 그러므로 전정진 교수가 『레위기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서 이 제사를 “속죄제보다는 정결제 또는 정화제라는 번역이 이 제사의 성격과 목적을 잘 나타내기에 좀 더 바람직한 번역이라 할 수 있다.”라고 한 것은 매우 적절하다고 봅니다.

2)속죄제는 하나님의 임재를 가능하게 하는 제사

  속죄제를 통해 허물이나 부정을 씻어 정결을 회복하는 목적은 하나님의 임재 때문입니다. 허물이 있거나 부정한 사람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또 거룩하신 하나님은 부정한 성막이나 회중 가운데에 거할 수 없습니다. 이 때 속죄제를 드려 허물과 부정을 씻고 정결케 함으로써 하나님의 임재를 가능하게 합니다. 매년 일곱째 달 열흘 날(속죄일)에 드리는 속죄제 규례(레 16장)를 보면, 이것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레 16:14-19) 그는 또 수송아지의 피를 가져다가 손가락으로 속죄소 동쪽에 뿌리고 또 손가락으로 그 피를 속죄소 앞에 일곱 번 뿌릴 것이며
(15) 또 백성을 위한 속죄제 염소를 잡아 그 피를 가지고 휘장 안에 들어가서 그 수송아지 피로 행함 같이 그 피로 행하여 속죄소 위와 속죄소 앞에 뿌릴지니
(16) 곧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과 그들이 범한 모든 죄로 말미암아 지성소를 위하여 속죄하고 또 그들의 부정한 중에 있는 회막을 위하여 그같이 할 것이요
(17) 그가 지성소에 속죄하러 들어가서 자기와 그의 집안과 이스라엘 온 회중을 위하여 속죄하고 나오기까지는 누구든지 회막에 있지 못할 것이며
(18) 그는 여호와 앞 제단으로 나와서 그것을 위하여 속죄할지니 곧 그 수송아지의 피와 염소의 피를 가져다가 제단 귀퉁이 뿔들에 바르고
(19) 또 손가락으로 그 피를 그 위에 일곱 번 뿌려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에서 제단을 성결하게 할 것이요  

  16절을 보면, 속죄하는 것은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과 ‘그들이 범한 모든 죄’가 아니라, 그들의 부정과 죄로 말미암아 부정해진 ‘지성소’와 ‘회막’입니다. 또 19절을 보면, 피를 뿌려 속죄하는 것은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이 아니라,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으로 말미암아 더럽혀진(부정해진) ‘제단’입니다. 이는 속죄제가 그동안 교회가 생각하고 있던 것처럼 죄의 용서를 위해 드리는 제사가 아니라, 그 죄로 인해 생긴 허물이나 부정을 씻음으로써 정결을 회복하려는 제사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7월 10일의 속죄일에 하나님은 지성소와 회막과 회막에서 사용하는 모든 기구를 정결케 하고, 제사장 집안과 이스라엘 온 회중을 정결케 하도록 했습니다(17절). 물론 속죄제는 죄 용서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그러나 죄 용서는 속죄제를 통해 허물과 부정으로부터 정결케 된 사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이지(레 4:14, 20) 속죄제가 죄를 면제하거나, 대신 죄값을 치르기 위한 제사는 아닙니다. 정결과 죄 용서는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정결케 된 자에게 죄를 용서해주는 것은 일종의 공식입니다(겔 18:21-24). 

(겔 18:21-24) 그러나 악인이 만일 그가 행한 모든 죄에서 돌이켜 떠나 내 모든 율례를 지키고 정의와 공의를 행하면 반드시 살고 죽지 아니할 것이라
(22) 그 범죄한 것이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행한 공의로 살리라
(23)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어찌 악인이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
(24) 만일 의인이 돌이켜 그 공의에서 떠나 범죄하고 악인이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대로 행하면 살겠느냐 그가 행한 공의로운 일은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그 범한 허물과 그 지은 죄로 죽으리라

  그러나 정결과 죄 용서는 다르며, 정결케 되었을 때 하나님은 죄를 용서해 줍니다. 여전히 죄인으로 사는데 죄를 용서받는다는 주장은 하나님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입니다. 속죄제는 정결을 위한 제사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예수의 피를 속죄제물로 삼으셨다는 것을 근거로 하나님의 의가 덧입는 의나 전가되는 의라고 주장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며, 예수께서 속죄제물이 되심으로 우리는 실제로 정결하게 되어 죄악에서 떠난 몸이 됩니다. 

3. 하나님이 예수님을 어떻게 속죄제물로 세우셨는가?

  속죄제의 목적은 허물과 부정을 씻음으로써 정결케 하는 것임을 보았습니다. 정결케 하기 위한 속죄제 제물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해서 드립니다. 즉 피는 지정된 장소에 뿌리거나 바르고, 나머지 몸(고기와 기름 등)은 불사릅니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속죄제물로 세우셨을 때도 피와 몸을 구분하셨습니다. 

1) 예수 그리스도의 피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속죄제물로 삼아 손으로 짓지 아니한 하늘 성소의 속죄소에 뿌렸습니다(롬 3:25). 그것은 속죄일에 염소의 피를 속죄소에 뿌림으로 이스라엘 온 회중을 정결케 한 것처럼(레 16:15-17)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믿는 온 백성을 깨끗하게 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구약의 짐승의 피로 드리는 속죄제에 비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드리는 속죄제가 얼마나 강력한지를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히 9:11-14)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13)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14)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구약에서는 속죄제 짐승의 피를 뿌려 육체를 정결하게 했습니다. 이제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은 ‘단번에’ 됩니다. 속사람을 깨끗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죄의 용서와는 다릅니다. 죄 용서는 그 안에 있는 죄를 없이 하지 못합니다. 따라서 그는 여전히 죄의 종노릇을 하며 하나님을 향해 죽어 있는 자입니다. 그러나 예수의 피는 죽은 행실 자체에서 깨끗케 하여 죄로부터 해방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님의 종이 되게 합니다. 이것이 속죄소에 뿌린 예수의 피의 능력입니다. 

  요점은 로마서 3장에서 말하는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는 ‘죄 용서로 인한 칭의’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는 속량, 즉 우리를 죄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롬 3:24절)과,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케 하여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을 섬길 수 있도록 하는 실제적인 의입니다(25절).

2)예수 그리스도의 몸

  속죄제물의 피는 속죄소에 뿌리고, 콩팥과 기름을 제외한 몸 전체는 진영 바깥에서 불사르도록 했습니다(레 4:11-12).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도 동일하게 영문 밖에서 속죄제물로 세워졌습니다(히 13:11-12). 

(히 13:11-12) 이는 죄를 위한 짐승의 피는 대제사장이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고 그 육체는 영문 밖에서 불사름이라 
(12)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예수 그리스도는 성경대로 예루살렘 성문 밖 골고다 언덕에 세워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임을 당하셨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 죽으심과 부활을 복음이라 했습니다(고전 15:1-4).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이 복음인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를 그리스도와 연합시켜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죄의 종노릇하는 옛 사람이 죽어 죄의 종노릇에서 벗어나고, 그리스도의 부활에 연합하여 하나님을 향해 사는 새 생명을 얻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는 죄의 종노릇하는 나의 옛 사람이 죽고 의의 종노릇하는 새 생명으로 사는 실제적인 의입니다.

  이는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범죄에 대한 보상과 하나님의 공의에 대한 만족으로 해석한 것에 큰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의가 덧입혀짐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이신칭의의 교리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드러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죄인이지만 의인이다.”라는 구호는 언뜻 매우 은혜로운 말씀으로 들리지만, 사실은 속죄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무용지물이 되게 하는 가증한 구호입니다. 속죄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피로 우리 양심을 헛된 행실에서 깨끗케 하여 거룩하게 하고, 하나님께 나아가게 합니다. 그리고 영문 밖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합니다. 저는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속죄제물로 세워 우리를 정결하게 하는 것을 믿으며, 이로써 하나님의 임재 안에 거하여 그가 주시는 은혜 누리기를 사모합니다. 

신부동교회 강금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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